​스팁이 불안하면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누군가한테 의지하려는 습성이 있는거 보고싶다. 멸팁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는데 혈청 맞고 그런 측면이 육체적으로 더 강해졌다고 치자. 그러고 70년 후에 얼음 상태에서 깨어나니까 불안한 상태가 더 심해진거야. 제 아무리 슢솔이라도 하루아침에 송두리째 바뀐 주변을 받아드려야 하는 건 쉽지않은 일일테니까. 거기다 윈솔 사건 이후로 암살자가 되버린 버키의 모습은 이제 겨우 제자리를 찾아가려는 스팁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고도 남았겠지. 스팁의 꿈에선 매일밤 버키가 나와 자신을 때리거나 원망하는 말을 쏟아내며 정신적으로 괴롭혀댔어. 스팁은 새벽에 소리지르며 자다 깨는건 예사였고 잠에 들지 않으려 뜬눈으로 밤을 지새는 일이 많아지겠지. 


스팁이 몇주째 밤새 잠을 설치자 다음날 컨디션도 좋을리가 없었어. 머리가 지끈대자 미간 사이에 패인 주름이 깊어지고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인상을 쓰고있는 경우가 많아졌지. 한눈에 봐도 상태가 안좋은게 눈에 보이자 콜슨이나 쉴드, 어벤 인원등이 안색이 안좋은데 괜찮냐고 물으면 스팁은 그냥 별 일 없다며 어색하게 웃고 말겠지. 그런 모습을 옆에서 말없이 지켜보기만 하던 토니가 어느날 스팁을 스타크 타워로 호출하는거야. 스팁은 중요한 용무 때문이겠거니 생각하고 쉴드 일을 마치고 토니를 찾아갔어. 스팁이 집에 들어서자 자비스가 토니는 타워 안에 있는 미니바에 있다고 말해줬지. 


스팁이 계단을 따라 미니바로 내려가자 토니는 양주 잔을 들이켜고 있었어. 스팁은 잠시 토니를 보고 맥이 풀려버리는것만 같았어. 얼마나 중요한 일이면 타워로 부른걸까싶어서 바쁜 와중에도 짬을 내 왔더니만 태연하게 앉아 술을 홀짝이는 모습을 보니 어처구니가 없는거야. 스팁은 다시 머리가 지끈거려오자 살짝 눈썹을 찡그렸어. 스팁이 성큼 다가가 토니 옆에 앉자 토니가 빈잔을 스팁 앞으로 내밀었어. 스팁은 손을 저어 사양했지. 


- 왜 날 부른건가? 


토니는 자리에 앉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스팁을 눈으로 슬쩍 흘기고는 자네 정말 재미없는 양반이랴. 라고 하더니 잔에 양주를 따라주는거야. 스팁은 계속 이어지는 두통때문에 슬슬 짜증이 올라왔어. 무표정한 얼굴로 용건만 간단히 말하게 라고 하자 토니가 눈치없이 분위기 깰래? 라고 독촉하자 그제야 스팁은 못이기는 척 술을 입에 털어넣었어. 술이 한두잔 정도 들어가는데도 토니는 계속 빙빙 돌려가며 대화를 이어갔지. 스팁은 평소 직설적인 그답지 않게 말을 돌린다는 생각을 했어. 자네답지 않군. 스팁이 토니를 빤히 바라보자 토니가 빈잔을 채우고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입을 뗐지. 


- 캡. 자네 프로파일을 봤어. 


철저하게 특급 기밀로 감춰쳐 있는 파일을 마음대로 열어보다니, 스팁은 역시 토니답다는 생각이 들었지. 도덕성이라곤 일말의 기대감도 찾아볼 수 없는 남자. 그에게 쉴드 시스템을 해킹하는건 밥 먹는것보다 쉬운 일일테니까. 토니가 봐도 딱히 문제될 문서는 없다고 생각하던 스팁은 잔을 입에 가져가려다 순간 멈칫했지. 딱 한가지 걸리는게 있었거든. 


- 군에 있을때 병사들의 사기를 위해 많은 일을 했더군. 


토니가 말을 끊고 술잔을 다시 기울이자 스팁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어. 무슨 이유로 토니가 70년이나 지난 일을 꺼내는건지 감이 잡히질 않았어. 거의 벼랑끝에 매달린 기분에 스팁은 토니의 손에 들려있는 잔을 뚫어져라 보고만 있었지. 상부의 명령이라면 뭐든지 한거야? 토니의 말에 오래전 일이 ​잔상처럼 머릿속에 스쳐지나갔어. 캡시클에 대한 상관들의 칭찬이 대단하던데 말야. 영상까지 남아있더라고. 토니가 스팁의 귓불을 매만졌어. 무슨 말을 하는건지 모르겠군. 스팁은 토니의 손을 손등으로 쳐냈어. 하지만 끈질기게도 토니의 손은 다시 스팁의 허리께를 더듬었어. 요새 같이 잠자리 하는 상대는 없고? 예전 캡 모습을 보니 꽤나 즐기는거 같던데, 없다면 그것도 참 곤욕이겠어. 스팁이 눈앞에서 빙글거리는 토니를 똑바로 응시하자 허리를 더듬던 손이 노골적으로 밑으로 내려갔어. 토니는 스팁의 엉덩이 위에 손을 얹더니 느릿하게 쓰다듬었어. 


- 날 이용해, 캡시클 


웃음끼를 가득 담은 그의 말에 스팁의 파란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어. 토니가 스팁 가까이로 몸을 숙이자 토니에게서 잔뜩 취한 술냄새가 풍겼어. 스팁은 독한 알콜향에 왠지 자신까지 취해버린것만 같았지. 지금 흥분한거 다 알아. 토니가 다시 귓가에 속삭이더니 다른 손으로 스팁의 턱을 살짝 잡아 당겼어. 서로 이용하는거야, 어때? 귓가에 뜨거운 숨결이 닿을때마다 몸이 오싹거렸어. 


얼굴이 바짝 다가오자 스팁은 눈을 감았어. 입술이 포개지자 입을 살짝 벌려 토니의 혀를 받아들였어. 소름끼칠 정도로 매끄러운 혀가 스팁의 입안을 헤집어 놓았어. 서로의 타액을 정신없이 교환하고 스팁의 비음섞인 콧소리가 희미하게 새어나왔지. 입술이 포개지고 한참을 질척일 정도로 혀를 섞던 토니는 스팁의 양 둔부를 움켜쥐고 주물렀어. 으응... 토니... 빨갛게 익어버린 스팁의 반응이 재미있는지 토니가 큭큭거리며 웃음을 흘렸어. 스팁의 몸은 흥분으로 금새 어쩔줄을 모르며 달아올랐지. 타인의 온기를 느끼는건 너무 오랜만이라 닿는 족족 속수무책으로 토니의 손길에 무너졌지. 그의 손이 닿는곳마다 홧홧거리며 잔뜩 신음하던 스팁은 못 참겠는듯 토니의 얼굴을 붙잡고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어댔어. 그리고 뜨거워진 아래를 저도 모르게 허벅지에 비비자 토니가 망할 캡시클 이라고 내뱉더니 거칠게 손목을 붙잡고 일어났어. 열기로 가득찬 토니의 눈은 흥분으로 가득차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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