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른 전력

* 주제 : 여름





한가롭게 ​낮잠을 자던 나는 불쾌할 정도로 숨 막히는 더위에 눈을 떠야 했다. 잠깐 눈을 붙인 것 같은데 온몸이 땀으로 끈적거렸다. 어느새 계절이 바뀌고 여름이 성큼 다가온 걸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날 깨운 주범이 내 가슴팍에 바짝 달라붙어 있는 게 보인다. 버키는 혀를 길게 쭉 내밀고 처량할 정도로 헥헥대고 있었지만 좀처럼 내 곁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더우면 제발 좀 떨어져 줘라.” 한번, 두 번. 밀어내는 걸 반복하기 여러 번. 손으로 아무리 꾹꾹 밀어내도 하얀 털 뭉치는 그대로 밀렸다가 다시 자석처럼 파고든다. 그의 끈질긴 집착에 내가 먼저 두손 두발 들기로 했다.


소파에서 내려와 몸을 쭉 펴고 스트레칭을 하자 버키도 얼른 따라 내려온다. 그리고 또 내 다리에 꿀이라도 발라놓은 양 찰싹 따라 붙는 것이다. 개들이 사람과 붙어 있으려 하는 건 본능적인 습성에서 나오는 행동이긴 하지만 특히 개수인인 버키는 나와 붙어 있는 걸 아주 좋아했다. 물론 그가 개의 형체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지라 주변인에게 쓸데없는 오해를 받지 않는 점은 불행 중 다행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끈적해진 몸을 씻고 싶어 욕실로 터벅터벅 향했다. 그러고 보니 버키도 씻겨야는데. 턱에 손가락을 대고 고민하고 있자 버키가 귀신같이 알아보는 눈치다. 내 다리에 찰싹 붙어 다니던 버키가 이번엔 멀찍이서 날 물끄러미 보기만 한다. 버키가 나에게서 떨어지는 순간이 딱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욕실에 들어갈 때다. 목욕하는 걸 끔찍이도 싫어하는 버키는 웬만해선 물 근처에 오지도 않는다. 내가 욕실로 들어가 버리자 버키가 들어오진 못하고 문 앞에서 이리저리 서성이고만 있다. 얠 또 어떻게 씻긴담. 약간 고민하다가 티셔츠를 벗으려 하자 버키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눈을 빛낸다. … 왠지 쉽게 넘어올 거 같은데?


“같이 씻을래?”


버키가 내 말에 귀를 쫑긋 세우더니 아직 수상쩍어 하는 표정을 지우지 않은 채 조심스럽게 욕실 문으로 앞발 하나를 슬쩍 들이민다. 욕조에 물을 채우고 있으려니 버키가 꼬리를 살랑댄다. 아마도 인간형의 모습으로 나와 같이 욕조에서 노는 걸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나랑 같이 놀자.” 버키를 향해 샐쭉 웃자 버키가 뒷발까지 모두 다 욕실 안으로 들이민다. 나는 버키가 꼬리를 마구 흔들며 방심한 순간 빠르게 털 뭉치를 낚아챘다. “잡았다!” 버키를 번쩍 들어 욕조에 집어넣었다. 쫄딱 젖은 털 뭉치가 뒤늦게 헤엄을 치며 빠져나가려고 허우적댔다. 계속 낑낑댔지만 제 발로 들어온 이상 목욕은 시켜야지 별 수 없는 일이다. 샤워기로 물을 뿌리며 속으로 끌끌 거렸다. 버키는 제가 당했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나를 원망스럽게 보았다. “그런 눈으로 봐도 소용없어.” 당했다고 생각했을 땐 이미 늦은 거다 짜샤.


“버키”


뒤늦게 샤워를 마치고 욕실에서 나오자 버키는 단단히 화가 난 상태였다. 애먼 시트와 쿠션에 왁왁 대며 마구 화풀이를 해대더니 침대 위에 놓인 쿠션에 고개를 묻고는 나의 목소리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침대로 다가가 옆에 앉아도 버키는 쿠션에 고개를 파묻고 절대 움직이지 않았다. 물론 엉덩이는 내 팔에 슬쩍 붙인 채로 말이다. 아, 이 귀여운 생명체를 어찌한단 말인가. 내게 속은 것이 어지간히도 분한가 보다. 아무래도 이번엔 단단히 삐진 모양이지만 그를 달랠 수 있는 아주 손쉬운 방법이 하나 있다.


“버키, 가슴 만질래?”


목에 두른 수건을 의자에 걸고 다시 침대로 돌아오자 그제야 버키가 고개를 쏙 내밀고는 반바지만 입고 있는 날 보더니 눈을 휘둥그렇게 뜨는 게 아닌가(동공도 마구 흔들린다). 개의 형체를 하고 있어도 얼굴에 감정 변화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런 단순한… 이라 생각하고 있을 무렵 하얀 털 뭉치가 후다닥 쿠션에서 나오더니 사람으로 변했다. 버키는 인간형을 유지하는 경우가 잘 없기 때문에 내 가슴을 만질 때가 거의 유일하다고 볼 수 있다. 아직도 그의 수려한 얼굴에 적응하는 것이 어려워 살짝 낯설긴 하지만 사람 모습을 유지하는 때가 많지는 않으니 나름 적절하다 싶었다.


버키는 내 등에 찰싹 달라붙더니 가슴을 꽉 쥐고 주물렀다. 왠지 얼굴을 맞대고 가슴을 만지는 게 부끄러워 내가 만든 룰인데 아주아주 가아아끔은 이 자세가 더 민망할 때가 있다. 오랜만에 가슴을 허락했더니 기분이 좋은지 뜨뜻한 콧김이 계속 목덜미에 와 닿았다. 콧노래라도 흥얼거리고 싶을 정도로 행복에 겨워하고 있을 버키의 얼굴이 그려지자 문득 놀려주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럼 이제 다 풀린 거 같으니 그만 만져.” 버키의 손을 잡자 갑자기 내 가슴을 쥔 손에 힘을 꽉 주더니 목소리를 잔뜩 낮춘다. “나 아직 화 풀리려면 멀었어.” 미간에 억지로 인상을 쓰고 있을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나긴 했지만 마음씨 착한 내가 모르는 척 넘어가 주기로 했다.


버키는 내 목덜미도 깨물어보고 한참을 제 맘대로 실컷 가슴을 주물럭댔다. 그리고 잠시 내게서 떨어지길래 다 끝난 줄 알고 홀가분해졌더니 그가 진지한 얼굴로 “나 오늘 진짜 화났어. 오늘은 이대로 못 넘어가.” 라고 하는 것이다. “그럼 오늘은 뭘 해야?”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버키가 재빠르게 앞으로 돌아와 내 위로 올라왔다. 눈 깜짝할 새에 나는 침대에 눕혀져 버키를 올려다보는 자세가 돼있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버키의 얼굴을 제대로 마주 보고 있기가 힘들어졌다. 뭔가 참기 힘들어진 내가 고개를 옆으로 피하자 버키의 고개도 똑같이 기우뚱하며 따라온다. 누가 개수인 아니랄까 봐, 이런 거까지 따라 할 필요는 없잖아. 그러니까 내가 이 상황을 참기 힘든 이유는 그의 특출난 외모가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지만, 사실 버키는 인간형일 때도 딱히 말이 없는 편이다. 과묵하다고 해야 할까. 딱 지금처럼 말이다.


“……”

“뭐야, 왜 그렇게 쳐다봐. 쑥스럽잖아.”


내 얼굴 뚫어지겠다. 얼굴이 달아오르는 거 같아 툭 내뱉었더니 내내 무표정을 유지하던 버키가 뭐가 재밌는지 슬쩍 미소를 짓는데 제발 내 앞에서 그렇게 웃지 말란 말이야. 내 가슴을 계속 주물럭대면서 잘생긴 얼굴로 살 인 미소를 짓는 건 그야말로 심장 폭 행이란 말이다. 하지만 버키의 돌출행동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가슴을 지분대는 내내 내게 미소를 짓더니 갑자기 내 가슴 사이에 얼굴을 묻는 게 아닌가. 왓더뻑! 나는 심장이 떨어질 정도로 깜짝 놀랐지만 다행히 입 밖으로 소리를 내진 않았다. 버키는 혀를 내밀어 유두를 할짝댔다. 그릇에 담긴 우유라도 할짝이는 것처럼 말이다.


“뭐하는 거야 대체. 민망하게.”


하지만 버키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 뒤통수를 얼얼하게 후려치고도 남을 정도였다.


“저 네모 상자를 보니까 암컷한테 이렇게 하더라고.”


버키의 시선이 내 컴퓨터를 향했다. 도대체 나 없을 때 뭘 본 거야. 아니 그것보다 꽁꽁 숨겨놨는데 어떻게 찾은 거지? 엊그제 신작이라고 새로 받아놓은 거라도 본 건가? 아니지,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닌데. 나는 혼란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와 금방 침착함을 유지했다. 버키의 주인으로써, 그의 잘못된 지식을 정정해줘야 할 의무가 있었다.


“난 암컷이 아냐 버키. 남자라고 남-자.”


난 그가 오해하는 점을 정확히, 그리고 여러 번 지적해줬다. 암컷이라니. 어디서 배워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버키의 부적절한 단어 선택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민망함은 왜 언제나 나의 몫인 것일까. 하지만 버키는 이해할 수 없단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암컷 맞아. 스티브는 암컷이야.”


웬일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 “버키…” 나는 그를 조용히 타이르려 했으나 “아냐! 암컷 맞아!” 그는 뚱한 표정으로 연신 우겨댔다. 버키가 말을 많이 하는 모습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강한 확신이라도 가진 듯한 얼굴이었다.


“이렇게 가슴이 큰데 암컷이 아닐 리가 없잖아.”


버키는 보란 듯이 나의 가슴을 움켜쥐고 유두를 우물거리며 중얼거렸다.


“스티브는 암컷이야. 내 암컷이다.”


순간 몸이 그대로 경직됐다. 아아아… 쪽팔려서 얼굴을 제대로 들 수가 없다. 내 암컷이라니. 그는 스스로 말해놓고 우쭐해 보이는 모양새였다. 이거 완전 어린애잖아. 외모 연령은 나와 비슷해 보여도 실제 나이로 치면 어린애가 맞긴 한데. 끄응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내 암컷♥” 더 나아가 그는 내 뺨에 뽀쪽하며 뽀뽀를 하더니 헤헤 웃으며 머리를 들이밀기까지 한다. 쓰다듬어 달라는 신호였다. 나도 모르게 결 좋은 머리칼을 쓰다듬어주자 칭찬으로 받아들였는지 만족스러운 얼굴로 다시 내 가슴으로 돌아간다. 아, 이게 아닌데.


버키가 하는 모양새를 유심히 관찰해보니 그는 내 유두를 할짝거리기만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이 본 포 르노 흉내를 꽤나 충실하게 내는 것 같았다. 이것이 바로 학습 효과라는 건가. 이제 보니 제법 능숙하게 내 가슴을 쪼물딱 거리며 애 무라는 것을 흉내내는 것 같기는 한데 말이야. 꼬집기도 하고 살살 지분대기도 하고. 그렇다고 내가 그의 서투른 손길에 흥분이 된다거나 하는 건 아닌데(내 체면이 있지) 문제는 다른 것에 있었다. 헐벗은 몸은 그렇다 치고 계속 묵직한 물건이 눈에 들어와 민망함에 차마 눈을 뜨고 있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다음부턴 옷 좀 입혀야겠다. 아니 일단 바지만이라도… 배우 같은 얼굴로 내 가슴 위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반칙인데(사실은 이미 퇴장 시켰어야는데) 움직일 때마다 아랫도리가 계속 닿으니 이러다간 체면이고 뭐고 내가 먼저 세우겠다. 나는 순간적으로 밀려드는 위기감에 왠지 이쯤에서 중단해야 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 이만하면 다 풀릴 때 되지 않았어? 버키, 이제 그만! 흐응…”


여기서 분명히 말하자면, 나는 저딴 신음이 아니라 이제 그만하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버키 때문에 끝매듭이 뭔가 잘못된 것 같긴 하지만. 버키가 계속 내 위에서 움직이다가 묵직해진 물건으로 엉덩이 사이를 꾸욱 누르는데 나도 모르게 신음을 흘린 것이다. 죽어죽어! 나는 당장 밖으로 뛰쳐나가 콘트리트 바닥에 머리라도 박고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버키도 내 이상야릇한 소리에 놀랐는지 가슴에 파묻었던 얼굴을 들고 날 빤히 내려다본다. 난생처음 보는 그의 표정에 절로 마른침이 삼켜졌다. 열에 들 뜬 눈이 한순간에 날 휘어잡는다. 갑자기 이상해진 분위기에 빨라진 심장 박동 소리가 귀에까지 크게 들리는 것만 같다. 뒤늦게 수습해보려 했지만 버키의 머리 위엔 귀가 튀어나와 있었다. 그는 내 다리 사이에서 꼬리까지 살랑살랑 흔들어 보이고 있다. 내가 아는 바로는 수인이 흥분하면 꼬리랑 귀를 보인다던데. 아… 이거 왠지 위험하다. 머리에서 적색 경고음이 울리고 있을 무렵 버키가 내 바지와 드로즈를 밑으로 끌어내리며 환하게 웃었다.


“나랑 그거 하면 화 풀어줄게.”







쓰고 싶었던 거랑 전력 주제가 맞는거 같아서 쓴건데 과연 여름에 맞는 내용일까;

제가 쓰고 싶을때만 글을 썼던지라 전력하면서 시간 압박을 좀 느꼈네요 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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