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스팁] 토니가 순진한 스팁 놀려먹는거 2
“이거 받아, 캡”
스티브는 눈앞에 불쑥 내밀어진 정체불명의 상자와, 빙글거리며 웃는 토니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토니의 손에는 핑크색 포장지로 싸인 앙증맞은 상자가 들려 있었다. 또 시작이군. 스티브는 미간에 주름을 지으며 귀찮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건 또 뭔가?”
“선물이지 선물. 오늘이 자네가 이 집에 온 지 100일째 되는 날이라고.”
토니가 손가락 1개를 펴 보이며 눈을 크게 뜨자, 그딴 걸 세고 있었어?라는 표정으로 스티브가 한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스티브가 상자를 건네받고 흔들어보자 토니의 입가가 미세하게 한쪽이 올라갔고, 예리한 캡틴이 그걸 놓치지 않고 캐치해냈다. 역시 선물은 핑계이고 다른 속셈이 있는 거였어. 스티브가 눈을 치켜뜨자 토니가 손사래를 쳤다.
“그렇게 의심쩍은 눈으로 보지 말라니까. 설마 내가 선물이랍시고 핑계 대면서 그 안에 초소형 카메라 같은 걸 달아서 자네의 벗은 몸을 본다거나, 도청을 한다거나 뭐, 사생활을 침해하는 양심 없는 일 따위를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이 스타크를 어떻게 보고! 토니가 코웃음을 치자 스티브의 표정이 아까보다 더 어두워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토니는 스티브의 얼굴이 급속도로 굳어가든 말든 그의 어깨를 손등으로 툭툭 쳐대며 활짝 웃었다. 그의 얼굴은 예의 장난을 꾸밀 때처럼 사악한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얼굴 좀 풀라고, 얼음과자양반. 토니는 회색 톤의 트레이닝 바지 아래 드러나는 스티브의 터질듯한 엉덩이를 훑어보며 느끼하게 덧붙였다.
“내 눈은 절대 틀리지 않는다고.”
My pleasure. 토니는 뭐가 즐거운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작업실로 내려갔다.
-
스티브가 자기 방에 틀어박혀있을 무렵 같은 시각, 토니는 어두운 작업실 안에서 모니터를 보며 빙글거리고 있었다. 각각 네 방향으로 나뉘어진 스크린 속에는 침대에 앉아 선물 포장지를 뜯고 있는 스티브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토니는 두 손가락으로 턱을 매만지며 그의 얼굴을 정면에서 비추는 스크린을 주시했다. 그리고 스티브가 조심스럽게 상자 안에 든 물건을 꺼내기가 무섭게 기겁하자 그 모습을 보며 소리 내어 웃었다. 상자 안에 든 물건은 요상한 레이스가 달린 핑크색 여성용 팬티였다. 스티브는 못 볼 거라도 되는 양 집게손가락과 엄지 끝으로 물건을 집어 옆으로 치우더니 상자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살폈다. 토니가 카메라를 숨긴 게 아닐까 확인하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저 순진한 캡틴을 어떻게 요리해야 할까. 스티브를 보는 토니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캡틴이 우려하는 CCTV라면 사실, 스티브가 스타크 타워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집안 곳곳에 설치돼 은밀히 관찰되고 있었다. 그가 옷을 갈아입는 장면은 물론이요, 샤워를 하고 나와 달랑 속옷 한 장만 걸친 몸매라던가 침대에 누워 자는 모습 등등, 캡틴의 사생활이란 사생활은 모두 낱낱이 카메라에 찍히고 있던 것이다. 토니는 녹화된 영상을 따로 분류해 보관까지 하는 철저함을 보였다.
“역시 캡시클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니까.”
앉아있는 흔들의자를 좌우로 빙빙 돌리며 안 그래, 자비스?라고 묻자 자비스가 사생활 침해 아니냐는 말을 했지만 토니는 들은 척 만 척 다시 화면의 금발 남자를 응시했다.
아쉽게도 토니는 며칠 전 잠결에 스티브의 가슴을 빨던 순간을 기억하지 못 했다. 자신의 침실까지 카메라를 달지 않았던 게 패인이라면 패인이랄까. 토니는 중요한(역사적인) 장면을 찍지 못한 사실에 직면하자 발을 동동 구르며 기함했다. 호시탐탐 만질 기회만 엿보던 캡틴의 가슴을 직접 만지고! 거기다 입에 넣어보기까지 했는데! 억울한 마음에 애꿎은 자비스를 닦달해 보지만 없는 것을 만들어낼 수는 없는 일이다. 토니는 그날 바로 스티브의 모습을 한순간도 놓칠 수 없다는 집념을 불태우며 집안에 카메라를 배로 늘렸다. 화면에 안 잡히던 사각지대까지 꼼꼼히 CCTV를 달고 나서야 안심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잠시 상황을 망각하고 자화자찬했던 게 문제였을까. 캡틴은 이제 자기 손바닥 안에 있는 거나 다름없다며 의기양양하게 웃던 토니는, 이틀이 지난 후 스티브가 지나가듯 툭 뱉은 말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스타크 타워를 나가겠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 나가 살겠다는 뜻이야. 더 이상 자네한테 신세 지기도 싫고…, 또…”
캡틴의 일방적인 통보에 토니의 여유로웠던 표정은 사라진지 오래였으며, 이제 그는 조급해 보이기까지 했다. 토니의 생각과는 달리 스티브는 그가 자신을 감시하는 걸 모를 정도로 둔한 편은 아니었다. 물증은 없지만 작업실로 내려갈 때마다 급하게 뭔갈 감추는 모습을 보는 게 한두 번이 아니었던지라 어느 정도 지레짐작하고 있던 것이다. 자비스한테 물어봐도 대답할 수 없다는 말만 되돌아오자 의심은 더해졌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위아래로 훑으며 끈적한 눈빛을 쏘아대던 남자가, 자신을 관음하고 있다 해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닐 터다. 토니 스타크라면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지.
“또 뭐?”
스티브가 말을 흐리자 평상시보다 제법 흥분한 토니가 덤비듯이 물었다. 스티브는 얼굴을 붉히며 거실 바닥으로 시선을 떨궜다. 스티브는 사실 토니와 침대에서 하룻밤을 보낸 이후 도저히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볼 자신이 없었다. 토니는 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겠지만 스티브는 불행하게도 악몽 같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었다. 토니가 가슴을 움켜쥐고 젖을 빨 듯 애무하는 손길에 흥분했다는 사실은 구식 남자에게 꽤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여자와의 관계도 전무하다 싶은 동정남이, 같은 남자의 손길에 반응한다는 것은 아무리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려 해도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스티브는 이제 자기 어깨를 붙잡고 흔들기까지 하는 남자를 보고 있으려니 얼굴이 화끈거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상기된 얼굴을 들키지 않으려고 몸을 돌리며 빠르게 말했다.
“벌써 집은 다 알아봤으니 오늘 계약하러 갈 거야. 딱히 짐이라고 챙길만한 것도 없으니 신경 써줄 필요없네.”
스티브는 말을 마친 채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토니가 한방 먹었다는 표정으로 넋 부랑자가 되어 서있자 자비스가 말했다.
“혹시 미스터 로저스께서 눈치채신 거 아닐까요?”
설마, 그럴 리가….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토니의 표정은 심각했다. 다 잡은 물고기를 놓칠 순 없지. 턱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잠시 생각에 빠져있던 토니의 움직임이 다시 바빠지기 시작했다.
“자비스, 3일간 근처에 있던 부동산 거래 계약이란 계약은 전부 찾아내. 지금 당장.”
-
스티브는 부동산 직원과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심각한 표정으로 마주 보고 앉아있었다. 남자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에도 계약이 취소됐다는 말이었다. 스티브는 예상치 못한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항의를 해봐도 남자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고객님껜 죄송하지만…. 새로운 계약자가 금액을 5배로 쳐준다고 우기는 바람에 저희도 어쩔 수 없이…”
죄송합니다. 남자가 비참하기 짝이 없는 표정으로 연신 허리를 숙였다. 직원은 우리도 어쩔 수가 없다구요. 제발, 넘어가 주시면 안 될까요? 란 표정을 가득 담아 애처로운 눈으로 스티브를 바라봤다. 이 직원이 무슨 죄랴. 스티브는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나야만 했다. 그리고 스티브가 가는 곳마다 번번이 계약 성사 직전 취소가 되자 슬슬 누군가의 입김이 의심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아예 회사 주인까지 바뀌어 버리자 스티브의 강한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그의 사전에 이런 짓을 할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었다.
“왔어?”
씩씩대며 작업실로 내려온 스티브에게 토니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손을 휘휘 흔들었다.
“왜 자꾸 내 일을 방해하는 건가?”
토니가 부품에 나사를 끼우며 무덤덤한 목소리로 내가 뭘?이라고 답했다.
“자네가 손쓴 걸 내가 모를 줄 알아? 이렇게 치사하게 나올 줄은 몰랐네.”
스티브의 낮은 목소리와 분노로 가득 찬 얼굴은 꽤 위협적이었다. 얼굴을 마주한 채 무슨… 이라며 시치미를 떼던 토니가 뒤늦게 아하!라고 소리쳤다. 얄미울 정도로 능청스러운 연기에 스티브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스티브, 이런 말이 있잖아. 들어올 땐 마음대로지만 나갈 땐 아니라는 말. 자네가 지금 딱 그 상황이라고. 이 타워에서 내 허락 없이 맘대로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거 참 유감이군. 토니가 과장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명백히 놀리는 말투에 스티브는 진심으로 그에게 한방 먹이고 싶어졌다.
“스타크,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
“내가 지금 이 녀석 조립하는 중이라 바쁘시거든? 새로운 아머도 테스트해봐야 돼서 말이야.”
토니가 말허리를 딱 자르고 자기 할 말만 떠들자 스티브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토니는 부품을 들고 스티브를 지나쳐 맞은편에 있는 데스크로 걸어갔다. 스티브는 그를 증오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만 했다.
“마지막으로 묻겠네. 진심으로 하는 소린가?”
“난 지금 엄청 진지하다고.”
스티브가 기가 찬 표정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폈다. 한참이나 뒷모습을 노려보다가 몸을 홱 돌려 계단을 올라갔다. 토니는 스티브가 사라진 계단을 보고 큭큭 거리며 웃었다.
“화내는 것도 귀엽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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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10:00, 스티브는 모든 연락을 끊은 채 타워에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토니의 행동에 대한 무언의 시위인 셈이었다. 토니는 모든 CCTV와 위치 추적기를 동원해 잠적한 스티브의 위치를 뒤지는데 열을 올렸다.
“이 노친네가 도대체 어디로 숨어버린 거야? 갈 데도 없으면서.”
선물을 핑계로 사준 바이크에 달린 추적 장치는, 타워 주차장에 쓸쓸히 주차되어있는 관계로 아무짝에 쓸모없는 상황이었다. 전화를 여러 번 해봐도 꺼져있다는 건조한 기계 음성만 흘러나올 뿐이다. 토니는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최근 인내심을 잃은 것 같은 토니의 모습에 자비스가 걱정스러운지 염려의 말을 던졌다.
“때가 되면 어련히 돌아오시지 않을까요. 미스터 로저스가 어린애도 아닌데요, Sir”
토니는 신경질적으로 시끄러.라고 대답하더니 다시 화면을 집중하다가 뭔갈 발견했는지 눈이 번쩍 띄었다. 골목가에서 5시간 전 스티브가 누군가의 집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포착된 것이다. 그의 초조한 얼굴에 잠시 화색이 도나 싶더니, 집 안에서 스티브를 반기는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곤 토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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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가 도어 벨은 신경질적으로 파바박 누르자 파란 문이 벌컥 열렸다. 안에서 나온 검은 머리의 남자가 한쪽 눈썹을 꿈틀하며 토니를 노려봤다. 토니도 지지 않고 노려보자 갑자기 눈싸움이 되어 한참을 노려보던 두 사람 사이 찬 바람이 돌자 토니가 먼저 침묵을 깼다.
“여어, 스파이. 캡틴 찾으러 왔다.”
토니는 버키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토니가 집안으로 들어서자 거실에 나뒹구는 술병이 눈에 들어왔다. 둘이 얼마나 술을 마신 건지 거실은 술병과 쓰레기 봉지들로 어질러져 있었다. 슈퍼 세럼 덕분에 술에 취하지 않는다지만 자기 앞에서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 스티브가 버키와, 그것도 일반인이라면 코가 비뚤어질 정도로 마셨다는 사실에 괜스레 화가 난다. 가출했다고 자기들끼리 축하파티라도 연 거야 뭐야? 거기다 토니의 심기를 가장 건드리는 것은 가출하자마자 틀어박힌 곳이 평소 죽고 못 사는 연인 사이처럼 붙어 다니는 단짝 친구의 집이라는 점이다. 왠지 지금 보니 스티브를 보는 버키의 눈이 자신과 똑같이 끈적한 것(전지적 토니 시점) 같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설마 딴 맘 품고 있는 거 아냐 이거? 토니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버키를 흘겨봤다. 카펫 위에 앉아있던 스티브는 토니를 보더니 사뭇 놀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집에 돌아갈 시간이야, 스티브. 투정 그만 부려.”
“돌아가게.”
스티브가 고개를 떨구며 시선도 마주치지 않자 토니는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로 다그치기 시작했다.
“어린애처럼 자꾸 이러기야? 여기가 무슨 피난민 도피처도 아니고.”
“내 맘대로 할 수 없다면 난 돌아가지 않을 거야. 자네한텐 내 권리를 함부로 박탈할 권한 같은 건 없다네.”
“왜 그렇게 고집부리는 건데? 스티브, 그냥 내 집에서 나랑 같이 살면 안돼?”
“……”
“설마 그날 일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니지? 난 하나도 기억 안 난다는데 대체 뭐가 문제야?”
“토니!”
스티브가 얼굴을 붉히며 목소리를 높였다. 벽에 기대 팔짱을 끼고 있던 버키는 둘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뭐야 이건. 그냥 흔한 부부싸움이잖아? 남의 사랑싸움에 끼게 된 애꿎은 버키가 눈새 커퀴들을 한심하게 보든 말든 둘은 십분째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스티브가 완강하게 버티자 토니는 비장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계속 우긴다면 나도 어쩔 수 없어. 이 집도 내가 사들여버릴 테니까.”
뭐야? 가만히 있다 날벼락 맞게 된 버키가 흥분하며 왼팔을 들어 올렸다. 스티브가 버키의 팔을 붙잡고 말리며 토니를 노려봤다. 어떻게 할 거야? 괜히 억지 부려 친구한테까지 민폐 끼치고 싶지는 않지? 스티브는 단호한 토니의 얼굴을 보다가 입술을 깨물더니 조용히 가방을 챙겼다.
-
토니의 옆 좌석에 앉아있는 스티브는 타워로 돌아가는 내내 말이 없다. 창밖만 내다보는 스티브를 토니가 힐끗힐끗 훔쳐 보기만 한지 벌써 십여 분째. 토니가 먼저 어색한 분위기를 깨보려 시도했다. 화가 어느 정도 가라앉았는지 목소리가 아까 전보다 조금 수그러들어있다.
“아직도 화난거야?”
“……”
토니는 다시 앞으로 시선을 돌리며 운전대를 고쳐 잡았다. 토니가 한숨을 폭 쉬었다.
“그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무슨 말이야?”
그제야 스티브가 발끈하며 토니를 돌아봤다.
“대체 언제쯤 내 마음을 받아줄 거야, 캡?”
“이건 또 무슨 장난인가?”
“내가 지금 장난하는 걸로 보여?”
토니가 어이없다는 식으로 묻자 스티브가 더 이상 못 참겠는지 불만을 터트렸다.
“그래. 자네한텐 언제나 매사가 장난이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이라도 진지한 적이 있었나? 무슨 이유로 매번 내 일을 방해하고 다니냔 말이야? 장난질이라면 이쯤에서 그만두라고.”
“내가 지금 자네 붙잡으러 다니는 게 다 장난으로 보여?”
“마음대로 남에 계약을 방해하고, 버키 집까지 쫓아와 창피 주고. 장난이 아니면 이게 다 무슨 짓이냔 말이야? 내가 타워에서 나가든 말든 그게 자네랑 대체 무슨 상관이냐고!”
토니가 갑자기 구석진 곳으로 몰아 차를 세웠다. 거칠게 끼익- 하며 차체가 세워지자 둘의 몸이 앞으로 크게 휘청거렸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토니의 얼굴이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표정이었다. 스티브가 토니를 노려보며 조용히 말했다.
“좋은 말로 할 때 다시 차 몰아.”
“지금 나랑 무슨 상관이냐고 했어?!”
토니가 화를 못 참고 씩씩대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래. 내가 나가 살든…”
“제길!! 내가 자넬 좋아한다고!”
절규 섞인 외침에 스티브가 잠시 할 말을 잃고 멍하니 토니를 응시했다.
“…뭐?”
“정말 좋아한다고… 그래, 말 나온 김에 솔직하게 말하지. 난 자네를 첨 봤을 때부터 $%^#에 ^$#@!#랑 @#!*&에 #$%#^&^ 하고 싶었다고!”
……WHAT?! 스티브는 갑작스러운 고백과 뒤이은 폭탄 발언에 입을 뻐끔거렸다. 정녕 이 남자는 수치심이라는 걸 모르는 걸까. 낯 뜨거운 말을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입에 담자 고지식한 스티브가 크게 당황했다. 어떻게 이런 장난을… 자네 장난이지? 그러나 혼란스러운 스티브의 상태와는 달리 그의 어깨를 붙들고 있는 토니의 얼굴은 놀라울 정도로 진지했다. 평소 장난기 가득한 스타크는 어딜 가고, 스티브는 눈앞에 있는 토니가 다른 사람인 것처럼 낯설었다. 그의 진지한 얼굴을 보는 것이 처음 있는 일이라 더욱 낯설게 다가오는 것인지도 몰랐다. 스티브가 뒤죽박죽한 머릿속을 정리하며 정신을 차리고 있을 무렵 어느새 토니의 얼굴이 바짝 다가와 있었다. 성인 남자 둘이 앉기 좁은 차체 안에서 이마가 닿을 정도로 가까워지자 스티브가 마른침을 삼켰다.
“토니?”
스티브의 목소리가 떨렸다.
“자네만 보면 박고 싶다고, 제길…”
그 말은 스티브의 정신을 쏙 빼놓을 정도로 흔들어 놓았다. 토니가 지금 그가 얼마나 흥분했는지 알 수 있게 의도적으로 한 말이었으며, 그의 계산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더 이상 모르는 척하지 마.”
귓가에 대고 약간 쉰듯하지만 섹시한 목소리로 속삭이자 스티브가 몸을 움찔거렸다. 스티브는 성적인 의도가 가득 담긴 끈적한 눈빛을 외면하고 싶어 고갤 돌려봤지만 토니가 스티브의 턱을 잡아 자기 얼굴을 보게 했다. 똑바로 토니와 눈을 맞추자 스티브는 본능적으로 이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상했고, 어쩔 줄 모르며 얼굴이 급속도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토니가 스티브의 열이 오른 얼굴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그리고 달래듯 부드럽게 스티브의 목덜미를 붙잡으며 아랫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좋아해, 스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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