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토니는 방문을 열었다가 침대 위에 누워있는 남자를 보고 두 눈을 깜빡였다. 캡시클? 타워에 도착하자마자 누군가 자신의 방에 있다는 자비스의 말에 아머까지 착용하고 들어선 토니를 반긴 건 익숙한 금발의 남자였다.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토니의 벌어진 입이 놀라 다물어질 줄 몰랐다. 나른한 얼굴로 침대 위에 누워 옷을 풀어헤치고 있는 스티브의 자태란. 그 고지식하고 무뚝뚝한 남자가 정녕 내 눈앞에 누워있는 게 맞단 말이야? 토니는 아머를 해체하고 가까이서 보기 위해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 눈부시게 빛나는 금발에 사파이어를 박아놓은 듯한 푸른 눈, 여자도 울고 갈 탱탱하면서도 하얀 피부, 금욕적인 얼굴과 동시에 섹시한 핫바디를 가진 아이러니한 남자가 스티브 로저스 외에 또 누가 있을까? 그것도 알파를 유혹하는 달콤한 오메가의 향을 풀풀 풍긴 채 나른한 얼굴로 누워… 자, 잠깐! 알파의 상징인 캡틴 아메리카가 오메가라니? 눈을 흐리멍덩하게 뜨던 토니가 그 대목에서 퍼뜩 정신을 차렸다. 


스티브 로저스는 알파 중에 최상 알파인 우성 알파이다. 브루클린 시절 몸이 약해 알파인 줄 모른 채 열성으로 살던 스티브가, 혈청을 맞고 우성 알파가 됐다는 전설은 미국인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었다. 


나의 취향을 간파해 외향만 스티브의 탈을 쓴 빌런의 짓이 아닐까? 토니가 요염한 자태로 누워있는 스티브를 의심의 눈초리로 노려봤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제 눈이 믿기지 않아 몇 번이나 눈을 비벼보게 되는 것이다. 토니는 안간힘을 다해 이성적으로 판단해 보려 했으나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아랫도리에 슬슬 반응이 오고 있었으니 그는 당장이라도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빌런의 짓이라면 참 악랄한 놈이로군. 고자가 아니고서야 눈앞에 차려있는 캡틴을 마다할 알파가 누가 있단 말인가. 진짜 빌런이라면 ^%%#를 한 다음 1%}*!!?£ 삐- 삐- 를 해줄 테다. 토니가 입을 앙 다물었다. 


“자비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남자가 로저스 맞아?” 


토니가 다급하게 허공에 대고 여러 번을 찾았으나 자비스는 무슨 영문인지 아무 대답이 없었다. 자비스? 빌어먹을! 왜 하필 이런 중요한 타이밍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거야? 순간 토니의 머릿속에 타워의 모든 기능이 마비가 됐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 타워를 해킹? 진짜 빌런의 짓이란 말인가. 토니가 신경질적으로 벽을 내려치자 줄곧 조용히 토니를 응시하던 스티브가 꼰 다리를 풀며 입을 열었다. 


“내가 의심스러워, 토니?” 


도발적인 질문. 이제 토니는 의심이 아니라 확신에 차있는 상태였다. 토니가 아는 캡틴은 다정하게 제 이름을 부르는 성격은 못되었다. 스티브는 언제나 격식 있게 그의 성만을 불러 토니를 짜증 나게 할 정도였으니. 무슨 대답을 해야 적절할지 토니가 고민하는 사이 스티브는 풀어헤쳐진 옷을 마저 벗어냈다. 스티브의 여유로운 몸짓에 오히려 토니가 플레이보이라는 명색에 어울리지 않게 한껏 당황했다. 스티브가 침대 위에서 한 올도 걸치지 않은 완벽한 나신이 되자 갈색 동공이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자네가 이렇게 의심이 많은 줄은 몰랐군.” 


사실 토니는 의심하고 싶지 않았다. 문을 열고 방을 들어설 때부터 눈앞의 남자가 스티브가 맞기를 속으로 수없이 빌었더랬다. 알파를 유혹하기 위해 짙은 페로몬을 뿜어내며 입꼬리를 올리는 그 붉은 입술에 마음껏 입 맞추고 싶었다. 금세 방안을 가득 메운 질척해진 공기에 숨이 턱 막혀버릴 것만 같았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폐부로 가득 달콤한 오메가 향이 뭉게뭉게 차올랐다. 흥분한 토니가 페로몬을 잔뜩 방출시키자 알파향에 취한 스티브가 다리를 양옆으로 넓게 벌렸다. 다리를 벌리자 한층 더 진한 오메가 향이 흘러나오며 입구에서 투명한 애액이 쏟아져 나왔다. 토니가 침을 꼴깍 삼키며 제 셔츠 단추를 몇 개 끌러 내렸다. 하얀 사타구니를 유혹적인 손짓으로 쓸던 스티브는 엉덩이 사이로 손가락을 가져갔다. 스티브의 눈은 똑바로 토니를 향하며 보란 듯이 내벽을 찌르며 뜨거운 숨을 토해냈다. 손가락을 휘젓자 액으로 가득 찬 구멍에서 질척거리는 소리가 났다. 살다 살다 캡틴이 제 손으로 구멍을 쑤시는 걸 보다니. 죽을 때가 된 건가. 토니는 눈을 크게 뜨고 성기를 꼿꼿이 세운 채 마른침만 삼키고 있었다. 스티브의 손가락이 드나드는 분홍빛 구멍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한 채 말이다.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꿀맛 같은 애액이 흘러나오는 근원을 질릴 때까지 맛보고 싶어 젖은 혀로 입술만 축이고 있었다. 


“토니이-”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스티브가 연신 토니의 이름을 부르며 신음 소리를 냈다. 흐트러진 금발의 머리칼과 눈물 맺힌 긴 속눈썹이 눈을 깜빡일 때마다 보기 좋게 팔랑거렸다. 토니…! 하아, 으응, 제발… 빙글 돌던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이며 내부를 들락거리는 모습은 음란하기 짝이 없었다. 깨물어 대서 붉어진 스티브의 입술이 토니를 향해 소리 없이 오물거렸다. F.U.C.K M.E 


토니 스타크. 참을 만큼 참았다. 

이제 그는 눈앞의 남자가 진짜 스티브이든 빌런이든 아무 관심조차 없었다. 그딴 걸 누가 신경 써? 가느다란 이성의 끈이 끊어지자마자 토니는 바지를 벗으며 침대로 달려들었다. 


“당장 박아줄게!!!!” 


토니가 스티브의 무릎을 붙잡고 그의 다리 사이에 막 자리를 잡으려 할 때였다. 


“……자네 혼자 뭐하나?” 


갑자기 다른 이의 목소리가 난입하자 토니가 눈을 부릅떴다. 분명히 낯이 익은 저 음성은 토니 밑에 깔려있는 스티브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발그스레한 볼을 붉힌 채 제 밑을 채워주길 기대하며 얌전히 시트를 잡고 누워있을 뿐이다. 스티브가 복화술을 쓰는 초능력자도 아닐 테고. 

도대체 뭘까. 

이상한 기분에 휩싸인 토니가 고개를 올리자 또 다른 스티브의 단정한 얼굴이 시야에 들어온다. What the… 토니의 입이 딱딱하게 일자로 다물렸다. 물론 그는 침대 위에 누워있는 스티브처럼 옷을 홀딱 벗고 있는 나신의 모습도, 포르노에 등장하는 여배우처럼 관능적인 모습도 아니었다. 막 운동을 마치고 왔는지 살짝 땀에 젖은 러닝셔츠와 트레이닝 바지의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있는 그는 평상시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을 한 채 문가에 기대 토니를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다. ?! 토니가 설마 싶어 눈을 비비자 거짓말처럼 침대에 누워 절 유혹하던 요부가 연기처럼 홀연히 사라지고 만다. 한동안 망연자실하던 토니의 얼굴이 와그작 일그러졌다. 잠시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 


뭐야 꿈?! 잠시 멍하게 있던 토니가 사태 파악이 됐는지 펄쩍 뛰며 빽 소리를 질렀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그의 수염까지 분노로 부들부들 떨릴 정도였다. 그리고 곧장 화살이 엉뚱한 방향으로 튀고 만다. 달콤한 꿈을 방해한데 대한 일방적인 화풀이나 마찬가지였다. 


“왜 내 방에 허락도 없이 들어왔어? 그것도 내가 자고 있는 걸 알면서 무슨 생각으로?” 

“새삼스럽게 같은 알파끼리 무슨 상관이지?” 

“구식이라 퍼스널 스페이스도 모르는 거야, 이 노친네야?” 


토니가 화를 참지 못하고 씩씩댔다. 스티브가 약간만 늦었더라도 토니는 기쁘게 오메가를 품에 안고 있을 터였다. 꿈에 나온 당사자를 앞에 두고 역정을 내는 상황이 누가 봐도 웃기긴 하지만 토니에게는 아주 중대한 일인 건 분명해 보인다. 꿈이 아니라면 그가 또 언제 오메가 스티브를 구경이나 해볼 수 있을까. 토니의 예민한 반응에 스티브가 팔짱을 끼며 눈을 가늘게 흘겼다. 


“어처구니가 없군. 남에 방에 몰래 카메라를 설치하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나한테 몇 번이나 들켰지?” 

“로마노프 양이 찾아낸 것까지 총 12번입니다, Sir” 


조용히 있던 자비스가 끼어들자 아직 꿈결에서의 앙금이 남았는지 토니가 볼멘소리를 했다. 


“시끄러, 자비스” 

“Sir. 스캔 결과 신체에 약간의 변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수면 중에 꾸신 꿈으로 인해 다소 심박 수가 오르고 몸의 체온이 상승했는데 잠꼬대를 분석해 본 결과 꿈에 나온 상대가 90%의 확률로 미스터 로ㅈ…”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분명 꿈에서는 일언반구도 없던 자비스가 시키지도 않은 분석을 하고 있으니, 토니는 아무리 꿈이었다지만 눈치 없어 보이는 자비스가 괜스레 얄미워지는 것이다. 씩씩거리며 뮤트 해버리는 토니를 스티브가 한심스러운 눈으로 보았다. 


“자비스한테 너무 뭐라 하지 말게. 자네가 끙끙 앓면서 일어나질 못한 다해서 걱정돼서 왔더니만, 내가 괜한 걱정을 한 모양이군.” 


스티브가 한숨을 폭 쉬자 토니는 신경질적으로 이불을 젖히며 일어났다. 스티브의 눈동자가 자연스럽게 토니의 모습을 따라 움직였다. 그러더니 갑자기 뭘 확인했는지 방향을 잃은 눈동자가 이리저리 방황하기 시작했다. 그는 적잖이 당황했는지 헛기침까지 했다. 방금 일은 미안하게 됐네. 다신 이런 실례되는 일은 없을 걸세. 토니는 스티브가 몸을 돌려 방을 나설 때 그의 얼굴이 살짝 붉어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문이 닫힌 뒤 토니는 무심결에 제 아랫도리를 내려다보고 작게 실소했다. 큰 크기의 물건이 존재감을 과시한 채 불룩이 솟아있었기 때문이다. 


토니는 스티브가 방을 나간 지 한참이 지났어도 침대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바지 밑이 축축했다. 사정을 했음에도 아랫도리를 세우고 있는 게 믿기지 않아 여러 번 마른 세수를 했다. 현실도 아닌 꿈에 등장한 캡틴에게 발정이라니. 토니는 살다살다 별일을 다 겪는다 생각했지만 꿈에서 본 그의 모습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섹시했다. 제대로 만져보지도 못한고 끝난 게 아쉬워 계속 입맛을 다셨다. 차라리 꿈인 걸 알았으면 앞뒤 안 재고 바로 달려들었을 것을… 그놈의 의심병! 스티브가 오메가라는 것만큼 허황된 꿈은 없을 테지만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아쉬움만 남는 꿈이었다. 꿈을 떠올리니 다시 아랫도리에 열이 몰리는 것 같아 토니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우성 알파인 토니에게 딱 맞는 이상형의 결정체는 스티브였다. 블론디, 글래머, 청순한 얼굴의 삼박자. 거기다 심심치 않게 보이는 백치끼까지. 그러나 이 완벽한 이상형의 치명적인 단점은 오메가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한마디로 그림의 떡이었다. 


토니는 탁자에 턱을 괴고 앉아 사람들과 대화하고 있는 스티브를 좇았다. 오늘따라 유난히 그의 금발이 반짝거린다. 스티브가 등을 돌리니 항상 성나 보이는 엉덩이에 저절로 눈이 갔다. 토니는 한참이나 그의 뒤태를 감상하며 입맛을 다셨다. 토니가 성의 없는 손동작으로 스크린을 휙휙 넘기고 있자 스티브가 토니의 곁으로 다가왔다. 스티브가 화면을 자세히 보기 위해 고개를 숙이자 둘의 간격이 꽤나 가까워졌다. 언제나 스티브에게서 나는 익숙한 알파향이 토니의 후각을 은은하게 자극했다. 하지만 오늘따라 미세하게 향이 다르다. 뭔가 더 달착지근하고 향긋한… 토니가 코를 킁킁댔다. 뭐지? 평소랑 좀 다른데. 저도 모르게 한참 코를 박고 있으니 어느새 스티브가 곤란한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다. 


“저기… 스타크?” 


주변이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조용해 고개를 휘 돌려보니 모두의 이목이 토니에게로 쏠려있다. ? 뭔가 손에 봉긋한 것이 느껴져 앞을 보니 그의 손(또 다른 자아를 가진!)이 스티브의 엉덩이를 야무지게 움켜쥐고 있었다. 스티브와 같은 스크린을 보고 있던 나타샤가 눈을 추켜올렸다. 이젠 하다 하다 같은 알파를 성추행해요? 깜짝 놀란 토니가 엉덩이에서 손을 뗐지만 나타샤의 속사포 공격은 멈출 줄을 몰랐다. 


“캡틴한테 그 망할 오메가가 되란 노래도 좀 그만 부르고요. 알파한테 그게 할 소리에요?” 

“겨우 농담 하나에 왜 그렇게 심각해?” 

“캡틴 좀 그만 괴롭혀요, 스타크” 

“내가 언제 괴롭혔다는 거야!” 


토니와 나타샤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던 바튼이 한마디 거들었다. 


“오메가가 되란 소리는 알파에게 굴욕적인 언사라고 생각하는데. 그것도 토니 스타크의 오메가라면.” 


쳇. 빈정상한 토니가 모르쇠로 일관하며 귀를 후비적대고 있자 스티브가 끼어들었다. 자자, 너무 흥분들 하지 말게. 스티브는 예의 그 사람 좋은 얼굴로 말리며 나섰지만 그의 이어지는 말에 토니의 얼굴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로마노프, 스타크가 말한다고 내가 오메가가 될 리도 없지 않나. 평생 이룰 수 없는 꿈일 텐데 그냥 맘대로 하게 놔두게. 난 아무 신경 안 쓰니까.” 


악의 없어 보이는 스티브의 말이 한순간에 비수가 되어 토니의 가슴에 푹 꽂혔다. 굳이 따지자면 비아냥대며 직설적으로 쏴대는 나타샤보단, 웃으면서 희망조차 뭉게버리는 스티브 쪽이 더 잔인하다고 해야할까.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사살 받은 기분에 토니는 입맛이 썼다. 치아를 드러내며 환하게 미소 짓는 스티브의 모습이 너무나 눈부셔 가슴 한쪽이 아려왔다. 



오늘도 가슴에 삼천 원 적립한 토니 스타크씨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