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식이는 상태가 점점 안 좋아졌어. 여친을 갈아치우는게 일주일에서 점점 줄어들더니 하루에 한번 꼴로 바뀌기 시작했거든. 크리스는 매일 바뀌는 여자들 때문에 햄식이가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지. 이젠 사귀는게 아니라 원나잇을 위해 아무나 닥치는대로 데려오는 수준인것처럼 보였거든. 전에 사귀던 여친이랑 헤어진 것이 꽤나 상심이 큰 모양이었어. 하지만 햄식이가 매일 난잡하게 데려오는 여자들 때문에 불편해진 크리스가 뭐라고 말을 해보려하다가도 상처받았을 햄식이 얼굴을 보고선 입을 다문게 한두번이 아니야. 그렇게 꾹꾹 참고 참던것은 생각지도 못한 때 기어이 터지고야 말았지.




크리스가 잠깐 낮에 볼일이 있어 급하게 학교에서 집으로 들린것이 잘못이었을까. 크리스는 현관문을 열자마자 거실에 엉켜있는 두 사람을 보고는 얼어붙고 말았어. 벌거벗은 여자를 벽에 세우고 뒤에서 열심히 마운팅을 하는 남자는 햄식이가 분명했거든. 두 사람의 짙은 페로몬과 헐떡이는 신음 소리에 크리스는 머리 끝까지 온몸의 모든 털이 쭈뼛 서는것만 같았지. 시발. 크리스는 저도 모르게 입에서 욕이 튀어나오고 주먹이 쥐어졌어. 크리스가 온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현관문을 쾅 닫고 나가자 그제야 누군가 들어온줄도 모르던 햄식이가 깜짝놀라며 여자의 몸에서 떨어졌어. 여자도 놀라 허둥지둥 옷을 챙겨입고는 햄식이에게 쫓겨나듯 서둘러 밖으로 나갔지. 여자가 나간 후로도 크리스는 여전히 밖에 서있었고 잠시후 문이 열리더니 햄식이가 밖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어.


- 안들어와?


크리스가 다시 집으로 들어서자 끝마치지 못한 정사로 아직 불룩한 햄식이의 앞섭이 보였어. 크리스의 미간이 자동으로 찌푸려졌지. 마구잡이로 입에서 튀어나온 목소리는 거칠수밖에 없었어.


- 시발, 이젠 하다하다 대놓고 거실에서…

- 알아. 네가 이 시간에 집에 들릴줄은 몰랐어. 미안해.


크리스는 햄식이의 즉각적인 사과에도 끓어오르는 화를 누를 수가 없었어. 크리스는 줄줄 사과를 뱉고있는 햄식이의 목을 붙들고 짤짤 흔들어 버리고싶은 심정이었지. 하다만 정사에 풍기는 진한 알파향이 계속 크리스의 심기를 거슬리게 했어. bloody hell… 크리스는 머리를 거칠게 쓸어올리며 햄식이를 노려봤어.


- 참다참다 말하는건데 너 요새 심하다는 생각 해본적 없어? 아무리 여기가 네 집이라고 해도 매일같이 섹파를 데려오는 것도 모자라 이젠 대낮부터 네 놈이 벌거벗고 뒹구는 꼴을 봐야 하냐고. 

- ……

- Oh…Fucking! 너, 설마 지금 나한테 집 나가달라고 묵언시위 하는거냐?

- Shit! 크리스! 그런거 아냐.

- 아니긴 뭐가 아닌데?


한껏 격양된 크리스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햄식이의 얼굴이 일그러졌어. 잘근잘근 물어뜯은 크리스의 입술이 유난히 빨갛게 부어올랐어. 너…! 햄식이는 뭐라 하려 입을 열었다가 크리스의 입술을 뚫어져라 보다가 다시 다물더니 고개를 휙 돌렸어. 시발, 됐다. 그만 하자. 햄식이는 인상을 찌푸린채, 양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는 그대로 집을 나가버렸지.




그날 이후 크리스는 크게 자책했어. 아무리 화가 났어도 햄식이를 너무 막무가내로 몰아부친것 같았어. 햄식이에게 유독 약한 크리스는, 본인이 화를 내놓고도 이대로 사이가 틀어질까봐 안절부절못했지. 사실 크리스는 알파 페로몬 때문에 신경이 곤두선데다 힛싸도 다가오니 더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던거야. 싸움 이후로 크리스는 집에서도 햄식이의 얼굴을 거의 볼 수가 없었어. 햄식이는 아침 일찍 집을 나갔고 새벽녘에야 돌아왔으니 마주치는 일 조차 거의 없었지. 크리스는 침대에 누워 한숨을 푹푹 쉬어댔어. 내가 왜 그랬을까. 아아악! 크리스는 머리를 쥐어싸고 신음하다 베개를 주먹으로 쳐댔어. 아무리 생각해도 그 날은 좀 답지 않게 과한 반응이었던거 같았어. 크리스는 이상하게 뭐에 씌인것처럼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할 수가 없었거든. 햄식이를 정리해야지 정리해야지 마음속으로 여러번을 다짐했었는데, 막상 직접 다른 오메가랑 붙어먹는걸 보니 돌아버릴 것만 같은거지. 크리스는 밤새 베개에 화풀이를 하고 그날도 새벽녘에 햄식이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서야 겨우 잠이 들었어.



-



- 너 요새 무슨 고민있냐?


크리스가 깨작거리며 반찬을 괴롭히는걸 옆에 앉아 있던 세즈가 큰 눈을 멀뚱거리며 물었어. 세즈는 크리스와 같은 과 친구인데 크리스가 오메가란걸 알고 있는 몇 안되는 절친중에 한명이었지. 그리고 세즈는 우성알파이기도 했어. 크리스는 한숨을 푹 쉬더니 눈썹을 팔자 모양을 만들어 보였어.


- 내가 그렇게 매력이 없나?

- 왜? 누가 너한테 별로래?


세즈가 몇번 눈을 꿈벅거리더니 베시시 웃음지으며 크리스의 볼을 꼬집었어.


- 누가 우리 예쁜이가 맘에 안든대? 내가 때려줄까? 내.눈.엔 우리 크리스가 세상에서 제일 예쁜데.

- …너 좀 느끼하다.

- 그러니까 나한테 시집오라고 몇번을 말해야 허락할거야, 크리스?


세즈가 아주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크리스의 양 볼을 잡고 자신의 얼굴에 부벼댔어. 또 시작이네. 저리가아- 간신히 세즈를 떼어낸 크리스는 주머니에서 울리는 진동을 느끼고 폰을 꺼내들었지. 세즈가 폰을 잡아채려는 걸 몸을 비틀며 막아선 크리스는 액정에 뜬 발신인의 이름을 보고 눈을 커다랗게 떴어. 문자는 햄식이가 보낸 것이었거든. 


[크리스, 화해하자. 오늘 집에서 술 마시면서 얘기좀 해.]







너무 오랜만에 썼더니 뭘 쓰려고 했던건지 까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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