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키는 화려하고 요염한 집사를 닮아 도도한 인상에 윤기나는 털을 자랑하는 벜냥이입니다. 버키는 나타샤 집에서 호위호식하며 먹고 뒹굴고 놀기만 하는 팔자 좋은 고양이입죠. 그러던 어느 날 매일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버키에게 뜻밖의 일이 일어났습니다. 버키의 집사가 새로운 동물을 데려온 것이었습니다. 나타샤의 품에 안겨온 동물은 한눈에 봐도 볼품없는 작은 강아지였습니다. 나타샤가 집에 오다 추위에 오도도 떨고 있는, 버려진 스티브가 불쌍해서 데려온 것이었죠. 버키는 난생 처음 보는 불청객의 등장에 바짝 털을 세우며 경계했습니다. 거기다 스티브의 몰골은 밖에서 쓰레기통을 뒤지며 전전했기에 그 꼴이 꾀죄죄한게 아주 말이 아니었거든요. 버키가 ‘이 냄새나는 잡종 놈은 내 구역에서 당장 꺼져!’ 라고 항변해 보지만 나타샤에겐 버키가 심술부리는 걸로밖에 안 보입니다. 근엄한 얼굴로 친하게 지내라고 일축한 그녀는 스티브를 안고 욕실로 들어갔습니다.


스티브를 일단 깨끗이 목욕시키고 털까지 손질을 하니 제법 개(?)티가 나면서 봐줄만 해졌습니다. 그제야 버키도 의외의 모습에 호오? 하고 눈을 크게 떴다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홱 돌렸습니다. 스티브는 버키랑 친하게 지내보고 싶어 스줍스줍한 마음으로 가까이 다가갔다가 아직 마음을 열지 않은 차가운 도시 벜냥이의 앞발에 어퍼컷을 얻어맞았습니다. 스티브는 예상치 못한 공격에 깨갱하면서 깜짝 놀라 소파 밑으로 숨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나타샤가 그 광경을 보고는 ‘사이좋게 지내야지 왜 애 기를 죽이고 그래?’ 라면서 스티브를 안아 쓰다듬어 줬지만 그 후로도 스티브는 버키 앞에만 가면 주눅이 들어서 기를 못 펴는 것이었습니다. 항상 버키가 집안을 어슬렁 활보하거나 아무데나 엎어져 퍼 자고 있으면 스티브는 구석에 짱박혀서 귀 접고 있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냉랭했던 첫 만남과 다르게 시간이 지나자 이제 제법 친해진 두 녀석은 서로를 챙겨주기까지 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버키는 겉으론 차가운 척 하면서 은근히 챙길껀 다 챙겨주니 나타샤는 주인한테도 안하던 짓을 하는걸 보니 고놈 참 신기하더랬죠. 역시 시간이 약이었던 겁니다. 스티브는 버키와 다르게 나타샤를 정말 잘 따르며 순하기에 그녀도 스티브가 쏙 마음에 들었습니다. 나타샤는 매일 버키를 혼자 놔두고 출근하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버키는 아무 생각이 음슴) 이제 사교성 좋은 스티브가 버키 곁에 있으니 안심이 됐습죠. 1+1이 집안을 두배로 엉망으로 만들어놔서 손이 더 가는 건 안비밀(…)







집안의 평화(?)가 지속되는 어느 날 나타샤는 스티브가 이상해진 걸 발견했습니다. 스티브가 밥도 안 먹고 기운도 없이 축 쳐져 있는데 헛구역질까지 하는 게 아니겠어요? 나타샤는 병이라도 걸린 건가 싶어 깜짝 놀라서 동물병원에 데리고 갔다가 생각지도 못한 수의사의 말에 정신이 아득해 졌습니다.


“저기, 방금 뭐라고…”

“임신입니다. 이제 2주째에요.”


나타샤는 수의사의 확인사살에 머리가 하얗게 비워지는것만 같았습니다.


“우리 스티브는 수컷인데요?”

“아, 모르셨군요? 수인 중에 수컷이라도 교미를 하면 임신할 수 있는 특이종이 있거든요^0^”

“수, 수인이요?”

“수인이라는 사실에 놀라지 마세요. 손님처럼 병원에 왔다가 처음 알게 되는 분이 많답니다! ^.^*”


방긋방긋하게 웃는 수의사의 얼굴을 보며 나타샤는 수인 등록까지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한동안 혼이 나간 것처럼 아무것도 손에 잡히질 않았습니다. 스티브가 사람으로 변하는 수인이라는 것도 놀라 자빠지겠는데 거의 매일 집에 있던 강아지가 어떻게 임신을 하고 왔는지, 그것이 참 미스테리한 일이었으니까 말이에요. ‘한눈 판 새에 어디서 붕가라도 하고 온 건가. 아직 새끼인데 이게 도대체 무슨 날벼락이야;’ 나타샤는 기억을 더듬어 스티브와 산책 나갔을 때를 떠올렸습니다. 나타샤는 벤치에 앉아있을 때 자기네 주변을 맴돌던 이웃집 남자의 개가 의심스러웠습니다. ‘그 아비에 그 자식이라고, 능글한 주인 닮아 계속 스티브 주변을 알짱대더라니 설마 그 개자식이? (욕 아닙니다)’ 나타샤가 손톱을 깨물며 혼란스러워하자 스티브도 제 주인이 걱정스러운 듯이 끼잉 거리면서 나타샤를 올려다보았습니다. 나타샤가 스티브 양발을 붙잡고 애기 아빠가 누구냐고 질책해보지만, 스티브가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옆으로 돌리곤 묵언시위를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나타샤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기도 안차겠습죠.


“애 아빠가 누구라고 왜 말을 못하니? 말을 못해!”


시간이 휘리릭 흘러 스티브의 배가 점점 불러왔고 드디어 새끼를 낳을 때가 되었습니다. 스티브가 끙끙 앓으며 몇 시간을 산고의 고통과 싸우는 것을 나타샤와 버키까지 긴장하면서 그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그리고 스티브는 건강한 세 마리를 출산했습죠. 아이구 내 새끼 잘했어. 나타샤는 자기 딸이 아이를 낳은 마냥 기뻐하는데 새끼를 본 순간 이상한 기시감에 흠칫했습니다. 아직 제대로 눈도 못 뜬 새끼 눈들이 모두 아빠가 누구인지를 주장하는 게 아니겠어요? 누가 봐도 눈 밑이 퀭하고 게슴츠레한 게 빼박 버키 자식…. 나타샤는 그제야 아빠가 누군인지를 눈치 챘습니다.


“너였냐?”

“… (먼산)”


나타샤는 다음날 진지하게 랩탑을 두들기며 중성화 수술에 대해 검색했습니다. 수인도 평범한 동물처럼 중성화를 시켜줘야 좋다는 게 대부분 애견인이나 전문가들의 결론이었습니다. 나타샤도 알고 있었습니다. 동물의 발정기가 한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때마다 스티브가 임신하는 것도 무리일 테니까요. 스티브가 임신할 수 있는 수인이라면 둘 중에 하나라도 중성화를 시키는 게 답이겠지요. 옆을 돌아보자 버키는 앞으로 닥쳐올 고난도 모른 채 소파에 편히 누워 하품이나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나타샤의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에 버키의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안되겠다, 버키. 네껄 자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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