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로저스가 스타크 타워에서 생활하게 된지 한 달. 토니는 요새 캡틴 덕에 새로운 취미에 심취해 있었다. 토니는 어떻게 하면 스티브를 골려 줄까 매일매일 머리를 굴리며 새로운 장난질에 골몰했다. 


“어제도 잠을 못 잤다고?” 


토니가 거실로 나와 희한한 병명(야/경증)에 대해 설명하자, 스티브가 기가 막힌 표정을 해 보였다. 스티브의 목소리엔 오늘은 또 무슨 장난질이야?라는 불신 가득한 시선이 담겨있었다. 토니는 쉴드 내에서 캡틴을 성희롱한 죄로 반성문까지 쓴 전적이 있었다. 거기에 브래-지어를 선물로 주었을 땐 어벤 동료들이 힘을 쓰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서 토니의 인생이 마감될 뻔한 게 불과 일주일 전 일이었다.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한 스티브가 토니의 행동에서 수상한 점을 발견하려 노력했지만, 그의 얼굴은 정말 잠을 설쳤는지 많이 초췌해 있었다. 토니는 더욱 연기에 혼신을 더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요새 자다가 발작을 일으키면서 깨는 덕에 잠을 통 못 자겠다니까. 꿈에서 빌런들이 날 쫓아온다구.” 


스티브가 두 눈을 깜박거리며 입을 열었다. 


“악당 입장에선 자네를 만나는 꿈이 악몽 아닌가.” 


토니가 어깨를 으쓱거리자 스티브는 보던 신문을 반으로 접더니 자비스를 불렀다. 


“자비스?” 

“Yes, Sir” 

“야경증에 대해 설명해주게.” 


토니가 아차차 하며 자비스에게 눈치를 주려 했지만 자비스는 줄줄이 증상에 대해 읊기 시작했다. 


“야/경증은 수면 중에 일어나서 강한 발성과 동작, 고도의 자율신경 반응을 동반하는 심한 공포와 공황상태를 보입니다. 수면의 처음 1/3 부분에서 공포에 질린 비명과 함께 잠에서 깨어나 일어나 앉으며 깨어나면 보통 그 에피소드에 대해 기억하지 못 합니다. 소아의 1~6% 정도가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야/경증은 주로 소아기에 발병했다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고 합니다.(feat 뇌이버)” 

“그래, 토니. 자네가 어린 아이라고?” 


스티브가 한쪽 다리를 꼬고 슬리퍼 신을 발을 까닥까닥 거렸다. 그의 얼굴은 어디 얘기해보려면 해보라는 눈치였다. 


“우리가 하는 일이 정상은 아니잖아. 항상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노출돼 있는데 스트레스를 안 받는 게 이상한 걸지도 모르지. 자네도 예외는 아니라구.” 


토니는 능청스럽게 손짓까지 더해가며 설득하기에 나섰다. 스티브는 같은 자세에서 양팔을 괴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흐음… 정신적인 압박이라면 병원에 가서 검진받는 게 좋지 않을까.” 

“벌써 갔다 왔는데 충분한 안정이 필요하다더군. 우리가 하는 일이 언제나 스펙터클 해서 안정이랑은 거리가 한참 멀지만.” 

“그렇다면 국장님께 휴가를 요청하는 게 어떻겠나.” 


토니가 잔뜩 실망한 표정을 짓더니 맞은편에 앉아 상체를 바짝 앞으로 당겼다. 얼굴이 가까워진 탓에 스티브의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또 재발하게 되면? 잠깐 휴식을 취한다고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까. 지속적이고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구. 자네도 이 일로 스트레스 받는 건 마찬가지잖아. 정서적 스트레스는 ‘가족치료’가 효과적이라고 하던데, 자네. 지금 내 말 듣고 있는 거지?”


잠시 정신이 유체이탈 한 것 같은 금발의 미남자를 다그치며 토니의 눈꼬리가 내려갔다. “스티브…” 토니는 이제 완벽히 스티브의 가장 약한 부분을 건드리고 있었다. 스티브는 토니의 무언가를 간절히 바랄 때 써먹는 목소리를 애써 외면해보려 했다. 그의 얼굴엔 이미 ‘자네도 불면증 있잖아.’ ‘나랑 같이 자자고!’ 따위가 쓰여 있었다. 스티브가 애먼 입술을 깨물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엔 침대로 끌어들이려고 별 수작을 다 부린다고 생각했지만, 순진한(망충한) 스티브는 흔해빠진 전략에 이미 설득당하고 있었다. 토니의 입술이 또 말을 꺼내려고 움직이기 전에 스티브가 먼저 선수를 쳤다. 


“대신 한 침대는 안되네.” 


한 남자의 비장한 표정과 또 다른 남자의 활짝 핀 표정이 대조적이었다. 토니는 마음속으로 예스!를 외치다가 ‘한 침대가 아니면 무슨 소용이야?’ 라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이것 또한 장족의 발전이려니 토니는 입을 다물었다. 





스티브는 침대 위에서 꼼지락거리며 과연 이게 잘하는 일일까 고민했다. 토니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그의 방에 와놓고는 침대를 혼자 차지하는 게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소파에 이불을 덮고 누워 비스듬히 팔을 걸고 있는 토니를 보며 입을 열었다. 


“정말 괜찮겠나?” 

“한 침대는 안 된다면서. 난 자네랑 같은 방에 누워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벌써 흥분…” 

“닥쳐, 토니” 

“Yeap.” 


순간 살기가 흐르는 냉랭한 목소리가 들리자 토니가 깨갱하며 찌그러졌다.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 토니 스타크 걱정이라는 걸 다시 되새기며 스티브는 혀를 찼다. 


어둠 속에서 스티브의 눈이 반짝거렸다. 방안에 얕게 코 고는 소리가 들리고 벌써 탁상시계가 새벽 2시를 알리고 있었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스티브가 자신의 침대도 아닌 곳에 누워있으니 쉽게 잠을 청할 수 없는 건 당연했다. 연신 베개를 뒤척거리며 한숨을 폭 쉬었다. 흐릿한 눈으로 벽에 걸린 시곗바늘이 째깍거리는 걸 노려보았다. 잠이 안 올 땐 뭘 떠올리라고 했더라. 스티브는 브루클린 시절 버키가 말해준 양을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잠시 눈을 감고 양을 떠올려봤다. 양 한 마리가 어느새 열 마리, 오십 마리, 백 마리가 되었다. 양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되자 머릿속이 더 복잡해져 애꿎은 머리를 헤집고 있는 순간 침대가 출렁거렸다. 소파에 누워있던 토니가 어느새 소리도 없이 다가와 스티브의 이불로 파고들고 있었다. 스티브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러다 정말 심장마비로 죽는 거 아닌지 모르겠군.” 


토니는 대답 대신 스티브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끌어당겼다. 스티브가 팔을 뿌리치기 위해 버둥거렸다. 


“계속 못 자고 뒤척거리고 있었잖아. 이러고 있으면 편안해 질거라구, 캡시클” 


스티브가 그의 팔에 갇혀 못마땅한 듯 툴툴거렸지만 그의 표정은 싫지만은 않았다. 귓가에서 속삭이는 토니의 목소리가 자장가처럼 나른하게 들렸다. 등판에서 전해지는 온기와 가지런한 숨소리가 스티브를 기분 좋게 했다. 스티브는 아까보다 훨씬 편안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짧은 시간 동안 거짓말처럼 꿈나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얼마나 잤을까, 스티브는 몸을 간지럽히는 느낌에 잠에서 깼다. 몽롱한 눈을 비비다 자신의 가슴을 쥐었다 펴는 손길에 화들짝 잠이 달아났다. 


“토니?” 


스티브가 벌떡 상체를 일으켜 토니를 내려다보자 다시 확 끌어당겨져 그의 품에 안긴 꼴이 돼버렸다. 스티브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됐다고 생각했다. 이목구비가 뚜렷이 보일 정도로 아주 가까운 거리였다. 토니의 숨결이 이마에 닿았다 흩어졌다. 벗어나려고 바르작거리자 이번엔 한술 더 떠 스티브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비벼댔다. 


“안자고 있는 거 다 안다고!” 


스티브의 허둥대는 얼굴과는 반대로 그의 얼굴은 잠에 곯아떨어졌는지 편안한 표정이었다. 잠시 후 스티브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정말 잠들어있었다. 토니는 입맛을 쩝쩝 다시며 못 알아듣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두툼한 손이 능숙하게 엉덩이를 움켜쥐었을 때 스티브는 그대로 동상처럼 굳어버리고 말았다. 토니의 손이 엉덩이를 부드럽게 쥐고 문지를 때마다 스티브는 어깨를 움찔거렸다. 스타크의 잠버릇은 생각보다 고약했다. 스티브가 밤새 그의 품에서 호흡곤란을 일으키든 말든 토니는 세상모르게 잠들었다. 





아침부터 상쾌한 조깅을 마친 토니가 목에 수건을 두른 채 거실로 들어섰다. 토니의 혈색 좋은 얼굴은 뺀질뺀질 하다못해 광을 내고 있었다. 


“여어- 좋은 아침.” 


토니가 식탁에 앉아있는 스티브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침 식사를 하고 있던 스티브의 눈 밑은 퀭하게 그늘져 있었다. ‘오늘도 캡시클의 금발은 눈부시군. 자네 빵빵한 가슴도 죽지 않고 여전한데?’ 이젠 인사말 수준이 된 농담에 면역이 됐는지, 스티브는 토니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아니 왜 그리 안색이 안 좋아? 이 몸이 어젯밤 직접 옆에서 서비스까지 해주셨는데? 너무 황홀해서 잠을 다 설치신건가?”


스티브의 입으로 들어가던 스푼이 멈칫하더니 말 걸지 말라는 오라가 뿜어져 나왔다. “거참 농담인데 사람 참 예민하기는…” 살벌한 기세에 입을 다문 것도 잠시, 토니는 어젯밤 꾼 꿈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다. 


“내가 꿈에서 쿠션을 안고 있었는데 얼마나 푹신하던지 촉감이 정말 끝내주더라구. 더 끝내주는 건 그 쿠션이 이- 만한 가슴으로 변했다니까.” 

“……” 

“환상적인 가슴골에 파묻혀 있는데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 가슴을 쥐고 입으로…” 


스티브가 얼굴을 구기며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움켜진 손은 부들부들 떨리기까지 했다. 토니가 “왜 그래?” 하고 묻다가 시선이 자연스레 그의 가슴을 향했다. 움켜쥔 가슴을 보던 토니가 눈을 여러 번 깜박거렸다. 곧 상황 파악이 됐다는 듯 주먹을 다른 손바닥 위에 겹치며 ‘아하’ 라고 하자 얼굴로 스푼이 날아들었다. 토니는 날렵한 몸짓으로 스푼을 피하며 “그게 자네 가슴이었어?” 라고 소리쳤다. 상황 파악이 다 된 토니는 노골적으로 크게 웃기 시작했다. 스티브는 “자네랑 얘기하기 싫다고!” 소리를 빽 지르며 쿵쾅거리며 일어났다. 귀에서 머리끝까지 온통 새빨간 것이 잘 익은 토마토 같았다. 쏜살같이 자신의 방으로 향하는 뒷모습이 거실에서 사라지자 토니가 자비스를 찾았다. 


“자비스! 어제 영상 찍힌 거 남아있어?” 

“……” 






무의식 중에도 성희롱이 완전한 토니 스타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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