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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 폐하께서 다시 뵙자고 청하시는데요.”

“오늘은 바쁘다 전하거라.”


스티브가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했어. 오늘만 벌써 세 번째 거절이었어. 스티브의 대답에 내관이 더 안절부절못하는 눈치였어. 또다시 별 소득 없이 돌아가면 토니한테 화풀이를 당할게 눈앞에 선했지. 내관이 마마 제발… 이라고 하자 스티브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냐며 언성을 높였어. 풀 죽은 얼굴로 내관이 밖으로 나가자 스티브는 한숨을 쉬며 책상 위에 들고있던 펜을 놨어. 스티브가 토니를 피한지 오늘로 열흘 정도가 지났지. 이 정도면 일부러 피한다는 걸 토니도 눈치챘을 거야. 그가 발만 동동 구르며 애먼 아랫사람들을 닦달하고 있을게 뻔했지만 스티브는 당분간은 거리를 두고 싶었어. 피터랑 합방 후에 결정한 일이라 토니가 오해할 소지가 아주 다분했지만 토니를 피하는 건 피터 때문이 아니었지.


이유는 스티브랑 피터가 합방을 하기로 한 전날로 거슬러 올라가. 스티브의 거처로 피터와 가깝게 지내는 귀족 가문의 여자(이름은 샬롯이라고 하자;) 가 갑작스럽게 찾아왔지. 독대를 하게 된 건 처음이라 마주 앉아 차를 마시는 내내 서로를 살피는 눈엔 경계하는 빛이 낭랑했어. 샬롯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더니 합방하시는 걸 경하 드리옵니다, 마마라고 하는데 그녀의 얼굴에서 피어오르는 건방진 표정은 전혀 축하 따위를 전하는 얼굴이 아니었어. 스티브가 본론을 얘기하라고 하자 샬롯은 저하와의 합방은 내일 하룻밤으로 끝난 걸로 생각하시지요라고 하더니 피터가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라고 하는 거지. 스티브는 어린 것이 갑자기 불쑥 찾아와 지금 뭔 말을 하고 싶은 건가 싶었어. 당찬 구석이 있다고는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맹랑한 꼬마였나 싶기도 하고. 샬롯은 계속 자기 가문의 업적을 자랑스럽게 말했어. 스티브는 원래부터 대대로 황후를 배출한 가문이었고 샬롯의 가문은 최근 막강한 경제력으로 뜨고 있는 신흥 가문이었거든. 스티브는 그녀의 장황한 연설에 고작 내세울게 가문의 이름밖에 없는 건가요 하면서 비꼬자 샬롯이 잠시 분한 표정을 짓더니 자기네 가문을 뒤에서 밀어주는 건 황제 폐하라고 하는 거야. 피터를 소개해준 것도 바로 황제 폐하라고 하고는 스티브의 반응을 살폈지. 토니가 샬롯을 직접 연결해줬다는 말에 스티브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어. 눈치 없는 샬롯은 자기네 가문 뒤에 든든히 토니가 버티고 있단 말에 놀란 거라 생각하고는 더욱 자랑스럽게 떠벌리기 시작했지. 폐하가 몸소 절 피터의 배우자로 점찍었고 얼마나 사소한 것까지 신경 써주는지 모르겠다며 토니와 자기네 가문 간의 친분을 과시하는데 그게 다 토니한테 이용당한 건 줄 모르는 걸 보니 생각보다 똑똑한 여자는 아닌 모양이었어. 토니는 네가 황후도 될 수 있을 거라면서 자기가 적극 지원해주겠다며 피터만 사로잡으라고 샬롯을 살살 부추겼거든. 샬롯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계속 입을 열었어. 저하의 심성이 착하셔서 홀로 독방에서 처량하게 늙어가는 비를 불쌍히 여겨 합방을 강행하신 게 분명하다며 속을 긁으려 하는데 스티브는 그녀의 말에 전혀 관심 없었어. 아니 오히려 안심하게 됐지. 피터가 이런 멍청한 여자를 좋아할 리 없다 생각했으니 말이야. 실제로도 피터는 그날 이후 매일 스티브의 얼굴을 보러 왔고 샬롯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지. 뒷날 그녀가 피터의 정실 비가 되고 황후가 된 뒤에도 말이야.


샬롯은 나갔지만 스티브의 머릿속엔 계속 의문점이 남아 있었어. 토니가 어째서 피터랑 샬롯을 이어 준 건가? 이쯤 생각해보니 피터 곁에 있는 수많은 여자들도 토니가 붙인 게 아닐까 의심스러운 거야. 피터가 연습을 빠진 날에 맞춰 토니가 훈련실을 찾아와 힛싸 언급을 했는데 왠지 우연이 아닌 거 같은 거지. 이게 모두 오래전부터 계획된 거라면 토니는 참 교활한 사람인 거 같았어. 스티브는 둘 사이의 성적인 텐션이 자연스럽고 어쩔 수 없는 알오 간의 본능적인 끌림이라 생각했거든. 토니랑 힛싸를 보내기로 한 것도 스스로 원해서 결정한 거라 생각했고 그 결정에 한 번도 의문을 품은 적이 없었지. 한 가지 또 마음에 걸리는 건 토니가 고르고 고른 게 샬롯의 가문이라는 점이었어. 스티브는 본가에서 어릴 때부터 정치학과 궁중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권력의 흐름을 보는 눈에 둔하지 않았어. 토니가 샬롯과 피터를 이어주고 힘을 실어준다면 그건 결국 제 가문을 누르려는 것과 같았지. 이때까지 뒤에서 그런 행동을 하고 다닌 것이 굉장히 의뭉스럽다는 생각이 들자 스티브는 토니와 거리를 둬야겠다고 판단했어.


그렇게 토니를 피하고 피터와 계속 지내면서 스티브는 피터와의 관계로 토니만큼의 만족감은 못 느꼈지만 대신 편안함을 얻었어. 다음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정인의 잠자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게 스티브에게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거야. 토니랑은 절대 그럴 수 없었거든. 누가 알아챌까 봐 밤중에 몰래 비밀 장소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했으니, 그리고 단둘이 있을 때마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행해지는 섹1스와 유1사 성12행위에 스티브도 넌더리를 칠 때가 잦았어. 야외라고 예외는 아니었지. 둘이 산책을 나갔다가 잠시 정자에 앉아 쉬고 있을 때도 토니는 스티브에게 손을 뻗쳤어. 스티브는 경호원들이 근처에 있다며 거절했지만 토니는 안 보이게 만지면 되는 거 아니냐며 로브 밑으로 손을 넣어 엉덩이를 만졌지. 누가 볼까 봐 스티브는 두려워 계속 주변을 살피는데 토니가 일부러 엉덩이를 꽉꽉 움켜쥐다가 슬쩍 ㅇㄱㅂ도 만지고 하는 거야. 귀까지 빨개진 스티브가 애써 태연한척해보는데 토니는 그 모습이 귀여워 죽을 뿐이고. 토니가 경호원들을 물린 건 한참 밖이었는데 그걸 모르는 스티브만 괜히 혼자 전전긍긍하는 거. 그렇게 토니가 ㅇㄱㅂ을 한참 만지다가 마루에 눕힌 다음에 여기서 하고 싶다고 쿵쿵 아랫도리를 부딪치면서 유1사 성12행위를 하는 바람에 스티브를 기겁하게 만들었지. 토니는 스릴 있어서 더 흥분된다고는 하지만 이런 관계가 2년 가까이 지속되자 심적인 죄책감이 계속 스티브를 좀먹어 갈 수밖에 없었어. 지칠 대로 지친 거지. 이제 스티브는 그냥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싶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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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얘기 좀 하자고 제안했다가 스티브가 꽃꽂이를 한다는 핑계로 거절하자 토니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어. 갖은 핑계를 다 만들어가면서 피하더니 이젠 하다 하다 꽃꽂이? 오메가스러운 (여성스러운) 것이라면 그렇게 질색을 하는 사람이 꽃이라니 하! 토니는 이제 기도 안 차는 거야. 날 얼마나 업신여기면 이런 취급을 할까. 토니는 당장 스티브가 있는 곳으로 뛰쳐 갔지. 시종이 스티브에게 고하지도 않았는데 토니가 문을 쾅 하고 열어젖히자 안에 있던 사람들이 다들 깜짝 놀라 토니를 쳐다봤어. 그러는 중 스티브는 태연하게 꽃을 다듬고 있었지. 단아하게 앉아 꽃을 만지는 그 모습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가 토니는 다시 스티브를 똑바로 노려봤어. 스티브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토니는 겁에 질린 내인들에게 다 나가라고 했지. 그러자 스티브가 주춤거리는 내인들을 향해 너희들은 가만히 있거라 라고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토니에게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어.


“폐하,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다음에 약속을 잡으시고…”

“모두 당장 나가!”


토니의 서슬 퍼런 기세에 다들 놀라 도망치듯 빠져나갔어. 스티브는 한숨을 쉬며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어. 요 며칠 새 토니가 오메가를 안는다는 소리에 아 이제 토니가 제게 흥미가 떨어졌나 싶었더니 그것도 아니었나 봐. 사실 토니가 오메가를 안는 건 맞는데 궁합이 맞는 오메가는 스티브 한 사람이라 도저히 아무도 성에 차질 않는 거지. 궁여지책으로 같은 남자 오메가라도 불러봤는데 남자는 보자마자 그냥 싫은 거야. 손끝 하나도 건드리기 싫었어. 토니는 달려오기 직전까지 화가 나서 뚜껑이 열리기 직전이었는데 스티브 특유의 페로몬과 꽃에서 풍기는 향기를 가슴 깊이 들이마시자 스르르 화가 풀렸어. 그 가슴에 맘껏 얼굴을 부비고 안고 싶은데 스티브의 너무나도 차가운 얼굴에 한껏 서글펐어. 토니의 목소리엔 아까와는 다르게 힘이 없었지.


“왜 날 피하는 거냐, 스티브”


스티브는 아무 말없이 토니를 응시하다가 입을 열었어.


“일부러 그러신 겁니까? 샬롯 가의 여식을 저하와 이어주신 일 말입니다.”


토니는 스티브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며 아차 싶은 거야. 어떻게 알았지? 혹시 샬롯이 떠벌렸나? 요새 자기가 밀어준다고 기세가 엄청 살아있는 모양이었거든. 어리고 철딱서니가 없어 보여서 왠지 탐탁지 않지만 그래도 가문 하나 보고 고른 건데 역시 믿지 않을 걸 그랬나 봐. 스티브가 파란 눈을 부릅뜨고 보는데 이번엔 장난 같은 걸로 넘어갈 분위기가 아니야. 그래서 토니는 부인하지 않기로 했어. 어차피 언제까지고 비밀로 지켜질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었는데 들통 난 시기가 좀 안 좋을 뿐. 이왕 들킨 거 토니는 그냥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지.


“그래서? 맞다면 네가 날 고발이라도 할 작정이야?”


토니가 당당히 나오자 스티브도 내심 당황했어. 아니길 바랐는데 너무 당당해서 뭔가 제가 잘못한 건가 싶어지고 토니가 잔뜩 실망스러워져.


“세자 저하 곁에 있는 수많은 여자들도 폐하가 그리 시키신 겁니까, 도대체 왜 그러셨습니까?”

“뻔한 거 아냐. 다 널 차지하려고, 널 내 오메가로 삼으려고 말이다. 네가 이렇게 빛나고 아름다운데 널 도저히 가만히 둘 수 없어서. 어차피 내가 혼인을 피터에게 미루지 않았다면 나와 혼인했을 몸이잖아.”


스티비… 토니가 간절한 표정으로 스티브에게 다가가자 스티브가 자기 합리화에 질렸다는 표정으로 뒤로 몸을 피했어. 그 사소한 행동 하나에 토니는 가슴에 크게 상처를 입었지. 상대에게 거부 받은 건 처음이었어. 그러니까 토니는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모른다는 거야. 울컥한 토니가 다다다 쏴붙이기 시작했어. 상처를 입을 때 자신을 방어하는 본능이 재앙의 주둥이와 함께 발동하는 거지.


“내가 여자들을 피터에게 붙인 건 맞지만 나랑 힛싸를 보내기로 선택한 건 너야. 내가 언제 너에게 한 번이라도 관계를 강요한 적이 있었어? 고작 니 남편이 여자랑 놀아난다고 착각해 날 방으로 끌어들인 건 너 아니고? 그것도 입은 건지 벌거벗은 건지 구분도 안 되는 속옷 한 장 걸치고 흥분제까지 뿌리고 누워서 날 유혹한 게 누구였지? 계집처럼 엉덩이를 흔들고 박아달라고 한 게 대체 누구 더냔 말이야.”


스티브의 얼굴이 수치심과 분노로 달아올랐어. 꽉 다문 입술이 파르르 떨렸지. 조용히 토니의 빈정거림을 듣고 있던 스티브가 입을 뗐어.


“그만두겠습니다.”


뭐? 토니가 눈을 크게 뜨며 입을 뻐끔거렸어.


“이제 폐하와 밤을 같이 보내는 일은 없을 겁니다.”


토니가 계속 진심이냐고 물었지만 스티브는 토니와 얼굴을 마주치지도 않았어. 돌아오는 말은 나가달라는 말 뿐이었지. 토니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갔어.


“그 말 곧 후회하게 될 거다.”


토니가 쿵쿵거리며 나가더니 문을 쾅 닫았어. 토니는 나갔지만 스티브는 실망스러움에 한참이나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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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내에 황제와 세자빈 사이가 살벌하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며칠 안가 그 둘의 불화설은 빠르게 잊혀 졌어. 세자가 병석에 앓아누웠기 때문이지. 지독한 감기에 걸렸는지 온몸에 열이 끓어오르는데 이상하게 가라앉지가 않는 거야. 온갖 주치의들이 다 달라붙어서 병간호를 하는데 스티브도 마찬가지로 피터의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어. 토니가 피터를 보러 궁에 가자 복도 근처에서 말소리가 들렸어. 스티브가 이틀째 잠도 안자 눈 밑이 퀭한데 쓰러질 거 같은 얼굴로 약까지 달인다면서 누가 좀 말려 보라는 소리였지. 눈물겨운 지극정성에 토니는 왠지 빈정이 상했어. 내가 아파도 저렇게 걱정해줄까 싶은 질투심 때문이지. 피터의 방에 들어가자 피터가 기절한 것처럼 병석에 누워 있었어. 토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괜찮은 거냐고 묻자 주치의 말로는 내내 끙끙 앓다가 혼절했다는 거야. 건강한 애가 왜 하필 이런 날씨에 독감에 걸린 건지 모르겠어. 토니는 땀에 젖은 피터의 초췌한 얼굴을 물끄러미 보다가 가까이 다가가 이마를 쓰다듬었어. 토니는 아들의 다 죽어가는 모습을 보다가 얼마나 심한 독감이기에 약을 써도 듣지 않는 건지, 의원들이 최선을 다 하고 있는 게 맞는 건지 의심스러웠어.


“도대체 고뿔 따위가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들다니 진료는 제대로 하는 것이오?”


그러자 주치의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어.


“폐하, 사실 이 경우는 약이 필요한 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고뿔이 아닐 수도 있으니 조금 더 추후를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만.”


토니는 의원이 병명이 뭔지도 제대로 모르니까 시간을 끄는 수작이란 생각을 하고는 벌컥 화를 냈어.


“이렇게 펄펄 열이 끓어오르는데 대체 고뿔이 아니면 무엇이란…!”


토니는 호통을 치다가 순간 어릴 때 똑같은 일을 겪었던 기시감에 입을 다물었어. 토니가 병석에 앓아누워있을 때 하워드가 머리맡에 앉아 곧 괜찮아질 거라며 이마를 쓸어주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거든. 2살 빠르긴 했지만 당시 토니도 피터와 비슷한 나이대였지. …!! 이건 설마? 말도 안 돼. 토니가 굳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어. 갑자기 정색한 그의 표정을 보고는 주치의가 의아해했지만 토니는 알파 페로몬을 뿌리며 밖으로 나갔지. 베타인 사람들도 페로몬을 느낄 수 있을 정도라 그 무시무시한 기세에 다들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피했어. 마침 피터의 방으로 향하던 스티브가 복도를 꺾다가 밖으로 나가는 토니의 뒷모습을 봤지. 페로몬을 마구 뿌리는 것이 어딘가 굉장히 살벌한 분위기였어. 스티브는 이럴 때 마주치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피터 방으로 들어갔어.







노잼인데 끝날 기미는 안보이고 내용은 점점 산으로... ㅜㅁ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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