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는 연못가에 서서 물고기 밥을 던져주고 있었어. 이따금 먼발치에 떨어진 스티브의 처소 쪽을 바라보는 토니의 얼굴은 여유로움으로 가득 차 있었지. 오래간만에 보이는 여유 자작한 모습이었어. 잠시 후 스티브의 처소에서 피터가 혼이 빠져나간 얼굴로 나오는 게 보였어. 얼마나 정신없이 달려왔는지 의복도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한 안쓰러운 모양새로 터덜터덜 걸어가는 피터를 보며, 토니가 ‘스티브한테 된통 깨진 모양이구만’ 이라며 혀를 찼어. 토니는 아까부터 스티브의 처소 앞에서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었거든. 피터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사태를 해명하려 스티브에게 달려갔지만 시종일관 냉담한 반응으로 일관하는 스티브에 마지못해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어. 토니는 이 모든 상황을 직접 행차해 관망하고 있었지. 이런 재밌는 구경거리에 절대 빠질 토니 스타크가 아니었으니까. 한번 등을 돌린 스티브가 절대 다시 마음을 주지 않을 거란 건 토니는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거든.


토니는 사흘 전 은밀히 절 찾아온 샬롯을 떠올렸어. 토니는 그녀를 보자마자 당장 나가라며 발작적으로 소리를 질러댔어. 샬롯이 스티브에게 떠벌리는 바람에 모든 게 다 들통난 터라 감정이 좋을 리가 없었지. 사실 원인을 따지자면 모든 원흉은 토니가 계획적으로 피터와의 사이를 방해하며 스티브에게 접근한 탓이었지만 제 잘못을 인정할리 없었어. 모두 다 너 때문이야 네가 다 망쳤어!를 시전하며 샬롯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급급하니 그녀로써는 억울한 면도 없지 않아 있는 셈이었지. 토니는 피터가 알파로 각성하자마자 눈에 띄게 이성을 잃고 있었어. 이때까지 피터가 스티브와 함께 밤을 보내도 여유를 잃지 않은 건 우성 알파로써 스티브를 뺏기지 않을 수 있다는 자신감 하나 때문이었지만, 피터가 알파로 발현하자 토니는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안일하게 행동했는지를 깨달았어. 이제 피터가 병석에서 일어나 제 컨디션을 되찾았으니 며칠 내에 두 사람이 합방하게 될 건 뻔한 일이고, 본딩에 임신까지 하면 토니가 스티브의 삶에서 영영 잊혀지는 게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수순이겠지.


“뻔뻔하게 어디서 얼굴을 들이민단 말이야. 당장 나가!”


분노로 길길이 뛰는 토니에게 그녀는 필사적으로 둘의 합방을 어떻게든 막아보겠다고 했어. 네까짓 게 뭘 어떻게 막겠다는 거냐며 더 불같이 화를 내자 샬롯은 무슨 짓이든 하겠다고 빌고 또 빌었지. 둘의 사이를 반드시 갈라놓게 손을 써볼 테니 한 번만 믿어달라면서. 그녀는 절실했어. 동시에 토니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어. 그는 마지막으로 한번 더 샬롯을 이용해보기로 했지. 이쯤 되면 뭔 짓을 써서든 둘 사이를 이간질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어차피 아들에 관련된 더러운 일에 직접 나서기도 뭐 했으니 남의 손을 빌리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었어. 들통이 난다 해도 토니와 관련된 일도 아니니 딱히 손해 볼 것도 없고 만약 일이 잘못되면 바로 발을 빼고 버릴 카드 말이야.

그렇게 해서 토니의 허락하에 샬롯이 선택한 방법은 오메가를 이용하는 거였고, 베타 때라면 넘어가지 않았을 피터가 알파로 막 각성한 덕분에 손쉽게 걸려들고 말았어. 둘의 사이를 갈라내기 위해 다른 오메가까지 서슴없이 이용하는 그녀는, 피터가 다른 여자와 동침하는 건 볼 수 있어도 스티브만은 절대로 못본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었지. 어린 것이 맹랑한데다 독하기까지. 토니가 계속 히죽거리자 뒤에 서있던 내관이 물었어.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오래간만에 얼굴이 좋아보이십니다.”

“좋은 일?”


내관의 질문에 토니는 잠시 생각에 잠긴 얼굴을 했어.


“흠, 뭐 비슷하다 볼 수 있겠지.”


토니는 멀찌감치 보이는 피터의 뒷모습이 완전히 점이 되어 사라지자 물고기 밥을 연못에 탁탁 다 털어 넣고 스티브의 처소 쪽으로 향했어.



-



스티브의 손에 쥐어진 목각 검이 짚으로 만든 허수아비에 퍽퍽 내리꽂혔어. 몇 번이나 내려쳤는지 모를 정도로 허수아비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헤져 있었지. 스티브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혀있던 땀이 콧등을 타고 흘러내렸어.


어젯밤 일어난 사건은 소문의 소문을 타고 반나절 사이 일파만파로 퍼져나갔어. 구석에 모여서 숙덕대다 스티브가 모습을 보이자 흩어지는 무리가 한둘이 아니었어. 궁내에 도는 소문이 스티브의 귀로 여과 없이 흘러들어왔어. 세자가 기운을 차리자마자 그렇게 정성을 다하던 세자빈 대신 다른 오메가를 안았다는 소리는 특히 스티브의 가슴을 날카롭게 후벼팠지. 알파로 발현하면 원래의 성향이 더 증폭되거나, 아예 성향이 바뀌는 경우가 있는데 세자는 ‘후자’라는 소리도 나왔어. 세자빈 자리를 탐내던 여자들은 역시 저보다 덩치 큰 남자를 좋아하는 알파가 어딨겠냐며 비웃었어. 그럴 줄 알았다는 수많은 눈초리들이 스티브가 가는 곳마다 따라붙었지만 스티브가 더욱 참기 힘든 건 피터의 실수를 알면서도 용납할 수 없는 자신이었지. 막 발현을 마친 알파에게 우성 오메가의 유혹은 저항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어. 피터는 거의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 수준이야. 스티브는 피터의 방문을 열자마자 진동하는 농염한 향수의 냄새를 맡고 방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차렸어. 스티브가 쓰는 것과는 좀 다르지만 이 정도로 진한 향은 흥분제밖에 없다는 걸. 거기다 바닥에 뒹구는 술병. 피터가 흥분제에 이성을 잃고 오메가에게 달려든 건 무리도 아니었어. 거기다 피터는 아직 어리지. 스티브와 같은 성인도 아니야.


하지만 머리로는 이해되는데 용서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도통 뭘까. 스티브는 피터의 얼굴을 보자마자 스스로 통제가 안될 정도로 화가 나는 걸 참을 수 없었어. 해명을 하러 달려왔을 때도 마찬가지였지. 스티브는 피터의 얼굴을 보고 있기가 힘들어 더욱 매몰차게 굴어 쫓아버렸어. 자신은 피터의 눈을 피해 2년간 토니와 관계를 맺은 주제에 어린 왕자의 실수 한 번을 용납하지 않는 옹졸함이라니. 피터에게 뱉은 독한 말은 제 자신에게 하는 소리나 마찬가지였어. 손에 힘이 들어가자 허수아비를 내리치는 검이 부러져 바닥을 뒹굴었어. 바닥엔 이미 여러 개의 부러진 막대들이 볼품없이 나뒹굴고 있었지. 스티브는 부러진 막대를 바닥에 던지고 새것을 꺼내려 진열대로 걸어갔어. 그때 문이 드르륵 열리며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어.


“와우, 살벌한데”


스티브가 고개를 돌리자 토니가 태연한 얼굴로 걸어들어오고 있었지. 스티브는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한 공간에 뻔뻔하게 발을 들이미는 그의 모습을 보자 눈살을 찌푸렸어. 아랫것들을 불러 한바탕 야단을 쳐야겠단 생각에 성큼성큼 문쪽으로 향하자, 토니는 뭔 생각을 하는지 뻔히 알겠단 얼굴로 어깨를 으쓱거렸어.


“설마 저 불쌍한 시종들을 혼쭐내러 가는 건 아니지? 오 스티비, 내가 들어가겠다는 데 이 몸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

“하지만 제 허락 없이는 누구든 맘대로 들어오면…”

“그쯤 해둬. 이때까지 내가 너와 거리를 둔 건 너의 의견을 존중해주겠다는 의미였으니까.”


잠시 아무 말없이 입을 다문 스티브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어.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피터 일로 궁이 하도 시끄러워서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야지. 방금 피터가 너의 처소에서 쫓겨났다는 소식도 벌써 다 퍼졌다고”

“그 얘기라면 전 드릴 말씀이 없네요.”

“그냥… 약간 의외다 싶단 말을 하고 싶어서. 언제나 이성적이고 관대한 스티브가 어린 왕자를 그리 매몰차게 쫓아버리다니. 피터 얼굴이 얼마나 보기 안쓰러웠는지 알아?”

“……”


토니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가자 스티브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어.


“무슨 말이 하고 싶으신 겁니까?”

“도저히 스티브 답지 않아서 말이지. 알파로 이제 막 발현한 어린애가 벌인 실수 하나에 그리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이유가 뭐야? 발현하자마자 겨우 창녀 하나 안은 거 가지고… 설마 질투하는 건 아니지?”

“…질투라니요?”

“내 짐작이 틀렸나? 뭐 아니면 말고.”


스티브는 빈정거리는 토니에게서 등을 돌리고 바닥에 떨어진 막대를 주우며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어. 토니는 스티브가 듣든 말든 근처에 널브러져 있는 작은 나무 의자에 걸터앉아 계속 종알거렸어.


“알파의 본능이란 게 사실 오메가는 죽었다 깨나도 이해할 수 없는 수컷의 영역이거든. 피터도 이제 한번 오메가 맛을 봤으니 그 유혹에서 벗어나긴 힘들겠지. 그리고 기왕이면 덩치 큰 근육질보단 여리여리한 여성 오메가를 더 선호하는 게 본능일 테니 너무 섭섭하게 생각지 말라고. 진짜 성향을 찾은 걸지도 모르니까. 아! 이건 혹시 착각할까 봐 하는 얘긴데, 내가 널 안은 건 수많은 여자들한테 딱 진절머리 난 터에 네 다리 사이에 달린 게 좀 특이해서 신기했기 때문이야. 맛있는 음식도 계속 먹으면 질리잖아. 가끔은 새로운 걸 먹어줘야지, 안그래?”


토니는 피터의 입장을 대변하는 척하며 알량한 제 자존심을 세우고 있었어. 스티브는 한심하단 얼굴로 막대를 치우고 있을 뿐이지. “내 말 듣고 있어?” “겨우 아랫것들 입방아 때문에 화가 난거야?” “다 잡아서 물고를 내버릴까?” 의자에 앉은 토니는 연신 빈정거렸어. “뭐 때문에 피터한테 화를 내는거야?” 토니가 집요하다 싶을 정도로 피터에 관한 일을 캐물으며 귀찮게 굴자 스티브의 입이 마지못해 떨어졌어.


“저하께서 겪으신 일이 단순한 실수라는 것쯤은 저도 압니다.”

“그럼 왜 용서를 안받아준건데?”


스티브가 뒤돌아 토니를 보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어. “네 입으로 실수라고 하면서 왜…” 

! 순간 토니가 눈을 크게 뜨며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났어.


“설마 진짜 질투하는 거 아니지?”

“……아닙니다.”


말은 아니라고 하는데 사실 스티브도 제 감정을 모르겠어. 하지만 오랫동안 보아온 토니가 스티브의 미묘한 표정 변화를 못 알아챌 리 없었지. 설마 싶었던 심증이 눈앞에서 확신이 돼가자 토니는 흥분하기 시작했어. 피터가 쫓겨났단 소리를 듣고 둘 사이도 이제 끝났다 싶어 떠보려 왔는데 사실은 스티브가 질투하고 있다는 사실이 꽤나 충격적이었지. 스티브는 제게 그런 기색 한번 보인 적 없으니까. 스티브랑 피터는 단지 명목상의 부부일 뿐이어야 했어. 스티브의 몸도 마음도 모조리 자신이 독차지해야 하니까.


“오… 스티브. 진짜 피터를 마음에 둔 건 아니지? 피터 몰래 즐길 거 다 즐겨놓고 양심이 있으면 미안해서 그런 말은 못하지.”

“……”

“나랑 발정 난 짐승처럼 뒹굴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안면을 싹 바꾸는 것도 모자라 감히 누굴 좋아해?”

“지금 짐승이라 하셨습니까?”

“왜, 넌 아닌 거 같애?”


스티브는 크게 숨을 내쉬었어. 격양된 토니와는 다르게 스티브는 최대한 감정을 꾸욱 누르며 차분하려 노력했지.


“전 그저 쾌락 하나 좇겠다고 몸을 굴리는 짐승도 아니고 설령 그랬다 하더라도 이제 다시 그런 실수 같은 건 하지 않을겁니다.”

“나랑 몸을 섞은 게 실수다? 재미있군. 근데 피터가 그 사실을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토니가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우고 살벌하게 나오자 스티브가 불안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봤어. 잘못해서 남들 귀에라도 들릴까 봐여서지. 또다시 두 사람의 대화는 험악해지고 있었어.


“네가 나랑 뒤에서 놀아난 걸 알면 피터가 무슨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지 않아?”

“폐하 그만하시죠. 더 이상 폐하와 제가 이런 대화를 하는 것 자체가 적절치 않은 것 같습니다만.”

“적절치 않다라… 네가 그런 말할 처지는 아니지 않나, 스티브”

“제발”

“지금도 발정 난 얼굴로 페로몬 줄줄 흘려대는 게 누군데. 나랑 그렇게 몸을 섞었으면서 아직도 내 앞에서 그거 하나 조절을 못해?”


오랜만에 접한 토니의 페로몬과 한껏 격양된 분위기에 덩달아 스티브가 페로몬을 흘려대고 있었어. 애써 담담한 척하고 있었으나 주변이 제 오메가 향으로 진동하는 걸 자각하자 스티브의 얼굴이 한순간에 수치심으로 일그러졌어. 토니가 서늘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고 있는 스티브를 노려봤어.


“여기서 개처럼 뒹굴고 싶지 않거든 날 더 이상 자극하지 마.”










오랜만에 쓴거라 앞에 내용도 잘 기억안나고 

별 진전도 없는데 대화만 잔뜩있고 오글오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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