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는 눈앞에 놓인 그림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 했다. 말로만 듣던 톰 히들스턴의 작품을 직접 보고 있노라니 생생히 전달되는 감각에 온몸이 전율하는 것만 같았다. 기존의 교과서 같던 르네.상스 작품들과 달리 대담한 콘트라스트를 이용한 기법은 강렬하고 감성적인 묘사와 더불어져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듯 어둠에 묻힌 그림 속의 인물들은 저마다 강렬한 감정을 뿜어냈다. 형태를 강조한 빛과 어둠의 대비는 당장이라도 캔버스에서 튀어나올 듯 사실적이었다. 


톰 히들스턴은 기존 주류들에 대한 반항, 저항으로 굴곡 넘치는 일생을 사는 사람이었으며 누가 뭐래도 최근에 가장 성공한 화가였다. 그러나 유명세를 타면 탈수록 그의 기괴한 행동도 극에 달했다. 도박, 음주, 폭행 사건과 체포는 두말할 것도 없고 부적절한 남녀 관계도 소문이 끊이질 않았다. 심지어 남자, 여자를 가리지 않는다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천재다운 광기어린 일화들은 그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시켰다. 크리스는 패트릭 공작의 소개로 톰의 집을 찾아가기로 했다. 


미리 약속을 잡고 찾은 그의 집은 로마 시내에서 꽤 번화한 거리에 자리 잡고 있었다. 크리스는 어렵지 않게 주소를 찾아 건물로 들어섰다. 문고리를 두드리고 잠시 기다렸더니 누군가가 나와 문을 열어주었다. 장신의 키에 마른 몸, 녹색빛이 도는 눈동자와 그늘진 눈매. 한눈에 봐도 눈에 띄게 잘생긴 남자였다. 크리스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톰 히들스턴씨? 미리 연락드린 크리스 에반스입니다.” 


들어오시죠 하며 길을 터주는 톰은 크리스의 생각보다 멀끔한 차림을 한 남자였다. 괴팍하다는 소문대로 우락부락하고 음울한 이미지의 광인을 떠올렸었기 때문에 그의 뜻밖의 외모가 호감을 불러일으켰다. 크리스가 알기로 톰은 사교성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여느 유명한 화가들처럼 후계자를 양성하며 교류를 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혜성 같은 등장은 유럽 전역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램브.란트와 루.벤스 등 그의 화풍을 추종하는 화가들이 급속도록 불어날 정도로 미술계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 주인공은 홀로 작품 활동을 즐기며 싸움을 좋아하는 갓 35세의 방탕아였다. 


크리스는 톰의 안내에 따라 1층의 접객실로 들어갔다. 톰이 위스키 병을 들고는 드시겠어요? 하며 잔을 앞으로 내밀었다. 크리스는 정중히 사양하며 햇볕이 잘 드는 자리에 앉았다. 톰은 잔을 들고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제게 작품을 의뢰하러 오신 건가요, 아니면 후원자 생각이라도?” 

“아… 사실 전 두 개다 관심 있습니다. 히들스턴씨의 그림에 흥미가 있거든요. 패트릭 공작께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웬만하면 히들스턴씨와 지속적인 교류를 하면서…” 


크리스는 톰이 위스키를 마시며 긴 다리를 꼬는 모습에 말끝을 흐렸다. 자신과는 다르게 길게 뻗은 다리가 우아한 움직임이었다. 턱에 손가락을 얹고 비스듬히 앉아있는 모습이 마치 한폭의 그림 같았다. 깔끔하게 면도된 맨질한 얼굴은 보면 볼수록 감탄사가 떠올랐다. “후, 후원을…” 갑자기 말을 더듬자 톰은 크리스의 미묘한 변화를 유심히 보았다. 크리스는 문득 그런 생각을 한 자신이 부끄러워져 헛기침을 하고 화제를 돌렸다. 


“작업실을 둘러봐도 될까요?” 

“당연하죠.” 


톰을 따라 작업실로 들어가자 기름 냄새가 코를 찔렀다. 여기저기 스케치한 그림들이나 의뢰받은 작품들이 겹쳐있었다. 작업실 구석에 20대 초반쯤 돼 보이는 남자가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톰이 눈짓을 보이니 그는 크리스에게 꾸벅 인사하고 문을 닫고 나갔다. 호기심 어린 눈빛을 담은 크리스를 향해 톰이 말했다. 


“제 조수입니다.” 


혼자 작업한다고 들었는데 조수를 두었었나? 크리스는 궁금했지만 곧 그에게서 흥미를 거두고 그림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그림을 감상하던 중 유독 한 작품이 이목을 끌게 했다. 크리스는 액자를 들고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림의 주인공은 약 15세 정도의 남자아이였는데 반쯤 가슴을 드러내 보인 채 술잔을 들고 권유하는 몸놀림은, 어딘가 그 나이 또래의 소년들치고는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이 아이는 마치… 


“유혹하는거 같다구요?”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다가왔는지 톰이 바로 옆에서 액자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둘의 어깨가 슬쩍 닿자 크리스는 너무 가깝다고 느끼곤 한 발짝 옆으로 떨어졌다. 톰은 위스키 한 모금을 마시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 그림에 관심을 보일 줄은 몰랐는데요.” 

“이 소년은 누구죠?” 

“델 몬테 추기경 집에 묵을 때 그분이 그리게 한 몸종입니다. 비슷한 그림이라면 여기 더 있죠.” 


톰이 구석에서 그림 몇 장을 더 꺼내 보였다. 각기 다른 소년들이 비파를 연주하거나 천으로 알몸을 아슬아슬하게 가리고 앉아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감상자를 유혹하듯 교태스러운 몸동작을 하고 있었다. 둔감한 사람이라도 그들이 성적 의도를 암시하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아아… 크리스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손가락으로 그림을 가리키자 톰이 미소 지었다. 


“남창입니다.” 


머릿속으로만 생각했던 단어가 톰 입에서 직접 나오자 크리스의 눈이 더 크게 떠졌다. 톰의 후원자인 델 몬테 추기경은 남다른 취향의 소유자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추기경의 집에서 사는 동안 톰이 그와 같이 잔다는 소문도 있었다. 톰은 여느 방탕한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모델들과 잠자리를 한다는 소문도 무성했다. 크리스는 바람결에 톰에게 동성애 성향이 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은 있지만 흔한 흠집 내기 용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 그럼 토, 톰씨가 저 소년들이랑…” 

“잤냐구요? 유감이지만 전 제 후원자의 소유물은 안 건드리는 주의라서요.”


무덤덤하게 말을 잇는 톰을 보며 크리스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 했다. 그리고 그다음 톰의 말에 크리스의 얼굴이 눈에 띄게 붉어졌다.


“하지만 모델이 본인이라면 얘기가 달라지죠. 그것도 당신 같은 사람이라면…”

“무, 무슨 소리를 하려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크리스는 톰이 자신에게 한 발자국 더 다가오는 걸 보자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톰의 손이 갑자기 얼굴께로 올라오자 크리스는 자신도 모르게 목을 움츠렸다. 


“당신의 본 모습이 궁금하군요. 뭘 감추고 싶은 겁니까?”

“실망시켜드려서 죄송합니다만, 전 감추고 있는 게 없습니다.”

“왜 전 거짓말 하는거 같죠.”

“제가 뭣 하러 당신께 거짓말 하겠습니까?”


크리스가 목소리를 높였다. 톰이 크리스의 단정한 칼라 부분을 손등으로 건드렸다.


“잘 차려입은 이 옷을 벗기면 왠지 본 모습을 드러낼 거 같긴 한데요.”

“……계속 이상한 소리 하실 거면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크리스가 애써 평정을 가장한 눈으로 잘라 말하자 톰의 눈빛이 더 반짝이는 것 같았다. “끝까지 거짓말 하시네요.” 크리스는 톰의 말이 불쾌했다. 처음부터 자신을 시험해 보는듯한 그 특유의 태도가 거슬렸다. 그리고 톰의 의도는 너무나 노골적이어서 크리스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런 분인지 몰랐군요. 제가 잘못 찾아온 것 같습니다." 

“진짜 몰라서 오신 건가요?" 


빙글거리는 웃음이 마치 자신을 비웃는듯해 크리스는 톰을 힘껏 노려보았다. 발을 떼려고 등을 돌리자 갑자기 손목이 붙잡혔다. 그리고 크리스를 경악하게 한 상황이 벌어진 건 순식간이었다. 물컹한 혀가 손가락 끝에 닿자 오싹 소름이 돋았다. 톰이 크리스의 손가락을 입에 넣은 것이었다. “뭐하는 거에요?!” 소리를 지르며 손을 빼려 하자 더 강하게 손목이 잡혔다. 다른 손도 톰의 손아귀에 간단히 제압당했다. 크리스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있어야 했다. 톰은 정성을 들이며 손가락을 하나씩 빨고 핥았다. 크리스의 손가락 마디마디에 입을 맞추며 톰은 천천히 입술을 미끄러트렸다. 타액이 춥춥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크리스는 어깨를 움찔거렸다. 도대체 이 상황은… 


크리스는 다리가 후들거려 서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내가 왜 여기서 이런 일을 당해야 하지?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대답 없는 질문만 던져댔다. 톰은 그런 크리스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보란 듯이 손끝을 부드럽게 핥다가 손마디를 끝까지 입에 머금고 부드럽게 혀를 굴렸다. 그 입놀림이 뭔가를 노골적으로 연상하는듯해 크리스는 눈을 질끈 감았다. 눈을 감자 톰은 일부러 더 크게 소리를 내어 빨았다. 바지를 꽉 쥔 크리스의 손에 땀이 맺혔다. 지속적인 감각에 약간 흥분한 크리스는 손가락이 깨물리자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냈다. 크리스는 본인이 낸 소리에 놀랐는지 입술을 꽉 물었다. 톰은 흡족한지 낮게 소리 내어 웃었다. 크리스는 그의 앞에서 조롱당하는 기분에 끌어 오르는 수치심을 억지로 눌러야만 했다. 손이 자유로워지자 크리스는 뒤도 안 돌아보고 건물에서 뛰쳐나갔다. 마차를 타고 돌아오는 중에도 다리가 후들거리며 진정이 되질 않았다. 깨물린 자리는 여전히 타는듯해 가슴이 쿵쿵 울렸다. 




크리스는 집에 돌아와서도 밤새 잠이 안와 몸을 뒤척거렸다. 낮에 만난 톰이 머릿속을 헤집어 엉망으로 만들었다. 톰의 말대로 크리스가 그에게 끌리는 건 사실이었다. 그는 처음 봤을 때부터 치명적일 정도로 매력적인 남자였다. 잘생긴 얼굴에 크리스가 호기심을 보인 것도 맞지만, 그의 앞에서 본심을 들킨 것만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머리를 헤집어도 잠은 오질 않았다. 크리스는 침대에 똑바로 누워 톰에게 깨물린 손가락을 들여다봤다. 어둠 속에서 손의 형체가 어슴푸레하게 보였다. 평범한 손가락에 무슨 마법이라도 건 것일까? 왜 그의 생각을 떨쳐낼 수 없는 거지? 자신의 손가락을 하나씩 빨던 톰의 모습이 계속 아른거렸다. 그의 혀가 닿았던… 


크리스는 슬쩍 손가락을 입에 넣었다. 톰이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손가락 끝을 혀로 할짝대 보았다. 손을 빨고 물다가 손끝을 깨물었다. 또다시 낮에 있었던 일이 떠오르자 이상한 충동에 휩싸여 저도 모르게 손이 밑으로 내려갔다. 벌써 흥분했는지 앞섶을 더듬으니 축축해져 있었다. 손으로 바지 위를 쓰다듬었다. 하아, 입에서 작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머릿속으론 그만! 을 외쳤지만 손은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계속 문지르다 보니 크리스는 더 강한 자극을 느끼고 싶어졌다. 결국 속옷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하아… 물건을 손에 쥐고 쓰다듬었다. 그리고 톰이 자신의 것을 입에 넣고 수.음하는 장면을 상상했다. 물건을 쓰다듬는 손이 더욱 빨라졌다. 아아… 톰 


크리스는 본인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놀라 벌떡 일어났다. 오, 갓… 내가 방금 뭘 한 거지. 남자를 생각하며 자.위라니, 최악이다. 크리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열을 식히려 창가로 다가갔다. 창문을 열자 서늘한 바람이 열기를 가라앉혀주었다. 창턱에 기대어 밝게 뜬 달을 바라보니, 머리에 가득 찬 음란한 생각이 정화되는 것 같았다. 거리의 모든 형체가 뚜렷이 구분될 정도로 달빛이 환한 밤이었다. 새벽의 로마 거리는 지나는 개미 한 마리도 없이 한적했다. 거리 곳곳에 있는 가로수를 바라보다가 크리스는 집 앞에서 서성이는 검은 그림자를 발견했다. 그림자의 주인은 키가 커서 한눈에 알아보기 쉬웠다. 저 낯익은 얼굴은… 톰? 크리스는 순간 헛게 보이나 눈을 비볐다. 환상일 리 없다는 듯 톰은 창가에 서있는 크리스를 올려다보더니 현관 쪽으로 와 섰다. 이 밤중에 저 자는 왜 날 찾아 온 것일까. 크리스는 대충 가운을 걸치고 1층 현관으로 내려갔다. 크리스가 문을 열자 그에게서 옅은 술 냄새가 풍겼다. 


“밤 중에 남의 집은 왜 오신거에요? 제 집은 또 어떻게 아신거죠?” 

“패트릭 공작한테 물어봤어요.” 


톰은 낮에 보았던 차분한 얼굴에 비해 여유가 없어 보였다. 크리스는 톰 입술 끝이 터진 걸 발견하고는 얼굴로 손을 가져갔다. “이 상처는 뭐죠.” 톰이 손으로 얼굴을 가리려했다. 터진 부분을 매만지는 손등에도 울긋불긋한 상처가 여럿 나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아까 그렇게 보낸 후 당신 생각만 하면 미쳐버릴 것만 같아서…” 

“네?”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을 듯 톰의 상처받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낮에 봤던 오만한 남자랑 동일 인물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그는 불안정해 보였다. 톰이 허락도 없이 성큼 집안으로 들어오자 숨결이 닿을 정도로 얼굴이 가까워졌다. 톰의 호흡은 아까보다 눈에 띄게 거칠었다. 


“아무나 잡고 싸움질을 해봐도, 당신을 벗기고 탐하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어요.” 


톰은 한숨을 몰아쉬더니 크리스의 얼굴을 감쌌다. 크리스는 차가운 감촉에 움찔했지만 이번엔 피하고 싶지 않았다. 욕망에 찬 톰의 눈빛에 온몸이 찌릿거렸다. 


“이번엔 도망칠 곳 없어요.” 


톰이 목덜미를 부드럽게 쓰다듬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톰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당겨 입술을 겹쳤다. 뜨거운 혀가 얽히고 두 남자는 달뜬 숨을 내쉬며 서로의 입술을 탐닉했다. 가라앉았던 아랫도리가 키스하면서 계속 맞닿자 금세 부풀어 올랐다. 톰이 몸을 실어 오자 크리스는 딱딱한 바닥이 등에 닿는 게 느껴졌다. 톰이 크리스의 풀어헤쳐진 가슴 위로 입술을 옮길 때마다 억눌린 신음이 새어 나왔다. 어느새 잠옷 바지와 속옷도 바닥으로 떨어지고 크리스는 나신으로 카펫 위에 누워 있었다. 





크리스는 그날 이후 톰의 후원자가 되었다. 톰의 후원자는 으레 다른 화가의 후원자들처럼 작품을 사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었다. 톰은 가는 곳마다 사람들과 시비가 붙고 싸움이 일어났기 때문에, 뒤에서 손을 쓰느라 바빴다. 톰의 불안정한 감정 기복과 다혈질은 쉽게 난투극을 불렀고, 그는 길들여지지 않은 한 마리의 야생마와 같았다. 물론 싸움이 이는 것이 꼭 톰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몇 주 전에 있었던 마리아노 백작의 사건이 그러했다. 자신의 정부가 톰을 불러들여 자화상을 그리게 하자 나이든 백작의 질투심을 불러일으켰다. 톰의 훤칠한 얼굴을 확인한 백작은 애먼 톰에게 달려들었다. 사소한 질투심이 폭력을 불러일으킨 사건이었다. 


크리스는 일이 생길 때마다 아무 불평 없이 뒤치다꺼리를 해주었다. 늘상 하듯 경찰서에서 톰을 꺼내고 상대방은 돈으로 입막음했다. 이번엔 술집 주인과 시비가 붙어 폭행죄로 경찰서에 구속되는 일이 벌어졌다. 평소에 자신의 영업장소에서 횡포를 부리던 톰을 탐탁지 않게 여긴 것이 화근이었다. 경찰서에 들어선 크리스는 보석금을 내고 복도를 따라갔다. 멍이 든 눈두덩을 부여잡고 구석에 앉아있던 술집 주인이 노발대발하며 눈에 불을 켰다. 


“저런 망나니 같은 놈은 평생 감옥에서 썩게 내버려 둬야는데! 왜 꺼내주는거요?” 

“……” 

“저 놈이 그쪽 기둥서방쯤이라도 되시나?” 


남자는 크리스를 위아래로 흘겨보더니 바닥에 침을 퉤하고 뱉었다. 뒤를 따르던 하인의 호통에도 눈을 부라리는 기세가 제법 사나웠다. 크리스의 미간에 주름이 패어졌다. 무언의 눈빛을 보내자 하인이 봉투를 꺼내 술집 주인에게 건넸다. 복도를 지나치자 톰이 갇혀있는 유치장이 보였다. 크리스는 철창 안에 누워있는 톰을 아무 말없이 바라보았다. 곧 경찰이 오더니 자물쇠를 따고 문을 열었다. 


“톰, 이제 나와도 돼.” 


톰은 크리스의 목소리를 듣더니 그제야 뒤척거리며 걸어 나왔다. 걷는 폼이 불안한 게 어지간히도 마신 모양이었다. 톰의 팔을 어깨에 두르자 기우뚱하며 몸이 앞으로 쏠렸다. 보다 못한 하인이 도와주려 나섰다. 크리스는 하인의 손길을 거절하고 그대로 톰과 걸었다. 휘청거리는 긴 몸뚱어리를 부축해 간신히 밖으로 나왔다. 찬 공기를 쐬자 톰은 그제야 좀 정신이 맑아지는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톰은 보통 작업을 시작하면 꼬박 2주 정도는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기나긴 인고의 작업을 마치고 나면 서민들이 이용하는 술집을 찾아 술독에 진탕 빠지거나 음울한 무리들과 도박을 즐겼다. 그러한 과정에서 싸움을 하는 건 너무나도 일상적인 일이었다. 크리스는 휘적거리는 톰을 간신히 붙잡고 마차 쪽으로 걸었다. 


“집에 데려다줄게. 타.” 


톰이 걸음을 멈추자 크리스가 그를 돌아봤다. 눈빛이 공중에서 아무 말없이 얽혔다. 녹색 눈을 덮은 긴 속눈썹 아래가 보기 좋게 그늘져 있었다. 억눌려있던 욕구는 촉매제만 있어도 쉽게 불이 붙고 타오른다.


“오늘 너네 집에 가면 안될까.” 


유혹하는 낮은 목소리가 달콤했다. 흠, 흠 크리스는 헛기침을 하고는 하인에게 그냥 바로 집으로 가자며 마차에 올랐다. 톰은 마차를 타자마자 잔뜩 흥분해서 덤벼들었다. 입술을 물어뜯듯이 맞추며 큰 손이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풀어헤쳐진 목덜미를 입술이 유난히 큰 마찰음을 내면서 타고 내려갔다. “으응… 톰.” 억눌린 신음에 만족한 듯 양손에 엉덩이를 가득 쥐어 꽉 주무르자, 크리스가 힉 하면서 어깨를 붙잡았다. “여기선 안돼.” 톰은 단추가 다시 채워지는 걸 보며 아쉬운 마음에 집에 도착할 때까지 크리스의 허리를 끌어안고 입술을 맛보았다. 


“하으응, 앗, 아…” 


방에 들어오자마자 크리스와 톰은 침대로 엎어져 금세 한 몸이 되어 뒹굴었다. 바닥에서 처음으로 격렬한 섹스를 나눈 뒤, 두 남자가 치르는 두 번째 섹스였다. “크리스, 크리스…” 톰은 허리를 강하게 쳐올리며 목덜미에 이를 박았다. 크리스의 손등 위로 손이 겹쳐치고 침대가 삐걱거렸다. 아흣! 옴짝달싹하지도 못하게 가두고 뒤에서 사정없이 박아대는 탓에, 크리스는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아찔함에 머리를 흔들었다. 톰이 뜨겁게 부푼 물건을 잡고 흔들자 앞뒤에서 가해지는 쾌감에 정신을 놓을 것만 같았다. 크리스는 또 한번 톰의 품 안에서 절정을 맞았다.










예전에 다른 장르에서 썼던 글을 고치긴 귀찮고 대충 손봐서 올려봤는데 음...

근데 제목 한번 진짜 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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