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스티브는 감옥에서 나와 창문도 없는 작은 방으로 끌려가 한참을 갇혀있었어. 반나절을 하얀 벽만 보며 멍하게 앉아있었지. 날이 어두워지자 곧 들이닥친 하인들이 스티브의 옷을 벗기더니 욕조로 끌고 가 몸을 씻겼어. 그리고 욕조에서 나오자 몸치장이 이어졌지. 아무도 스티브에게 말해주지 않았지만 스티브는 이게 무슨 의미인지 짐작하고 있었어. 치장이 다 끝나자 스티브는 아무도 없는 빈방으로 끌려갔어. 스티브에게도 익숙한 방이었지. 생전에 하워드가 쓰던 방이었으니까. 밖이 어두컴컴해질 때가 되서야 토니가 돌아왔어. 스티브는 토니의 얼굴을 보자마자, 사람들 앞에 끌려나가 모욕을 받던게 떠올랐어. 다시 그 치욕스러웠던 기억이 떠오르자 스티브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어. 토니가 침대에 앉아있는 스티브를 머리에서 발끝까지 훑더니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어.


“이제야 좀 오.메.가다워졌군, 로저스.”


스티브는 속이 훤히 비치는, 벗기기 쉬운 얇은 실크 가운을 입고 있었어. 가운 안에 겨우 밑을 아슬하게 가리는 속옷 하나 걸친 모습은 영락없는 창부의 모습이었어. 명백히 자신을 비웃는 소리에 스티브가 뿌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이를 악물었어. 스티브의 혐오 가득한 표정을 보더니 토니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졌어. “누가 내 앞에서 그런 눈을 하랬지?” 토니는 스티브의 표정이 괘씸한지 우악스럽게 손목을 붙잡고는 침대에서 끌어내렸어. “감히 내 앞에서 적개심을 드러내는 건가 노예 주제에?” 토니는 스티브의 양팔을 뒤로 붙잡아 바닥에 넘어뜨리고는 알파향을 다 개방했지. 갑자기 뿜어져 나오는 공격적인 페로몬에 스티브의 뒤가 순식간에 젖었어. 어제 감옥에서 있었던 끔찍한 일이 다시 떠올라 숨을 쉬기가 힘들었어. 토니는 아랑곳 않고 스티브의 옷을 찢어버리더니 애액이 줄줄 흐르는 작은 엉덩이를 움켜쥐었어.


“알파 앞이라면 엉덩이를 흔드는 천한 것이 네 주제를 모르는 게냐.”


스티브는 양팔을 붙잡힌 채 그대로 엉덩이만 쳐들고 난폭한 허리짓을 받아야만 했어. 난생 처음 몸을 꿰뚫리는 감각에 몸서리쳤지만 토니는 아무 배려 없이 스티브의 뒤를 헤집었어. 하워드에게도 이렇게 뒤를 대줬냐는 말이 잔인하게 귓전을 때렸지. 토니는 사정하자마자 스티브를 그대로 방치한 채 옷을 챙겨 입고 나가버렸어.


첫날을 겁탈 당하듯이 당한 스티브는 다음날도 다음날도 매일같이 토니의 침대로 끌려가 실신할 때까지 시달려야만 했어. 괜히 반항해보다가 토니한테 맞아서 온몸이 파랗게 멍들기 일쑤였지. 매번 침대 위에서 신경전이 벌어졌어. 스티브는 토니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고 토니가 억지로 턱을 붙들어 제 얼굴을 바라보게 했지. 제 모습을 담고 있는 아름다운 파란 눈이 경멸에 가득차 찌푸려져 있었어. 토니는 또 빈정 상해서 스티브의 가슴을 쥐어짜듯 주무르고 마구 깨물어 잇자국을 만들었지. 스티브는 입술만 깨물면서 작은 신음 소리조차 안내려고 버티는데 그 모습조차 토니의 눈엔 자극적이라 혼자만 애가 타는 거야. 스티브는 페로몬을 개방하지 않으면 흔한 반응조차 안보이거든. 완전히 고분고분한 제 오메가로 삼고 싶은데 생각보다 스티브가 너무 완강해. 스티브를 손에 넣으려고 제가 이때까지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자기를 자꾸 거부하니까 화가 치미는 거지. 하워드 밑에선 앙앙대면서 허리 흔들고 있었을 모습이 자꾸 떠오르고.


토니는 진심으로 스티브가 자기 침노인걸 인정하고 복종하길 바랬어. 매번 스티브를 안기는 하지만 페로몬을 이용하는 건 형질 차이로 억누르는 것밖에 안됐으니깐. 자존심에 금이 가기 시작한 토니는 다른 방법을 쓰기로 했지. 좀 극단적이긴 하지만 그건 스티브를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서 강제로 안는 거였어. 럼로우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면서 말렸지만 토니 눈엔 뵈는 게 없었지. 방안으로 병사들을 불러들여와 둘러 세워두고 토니는 옷을 다 입고 스티브만 알몸인 채로 박혔지. 스티브가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 토니가 끌어내렸어. 얌전히 안 있으면 병사들에게 돌려가면서 범하게 하겠다고 협박도 하면서 말야. 몇 번 그렇게 안았는데 스티브가 수치스러워 하는걸 보고 꽤 만족한 토니는 방 앞에 병사들을 세워놓고 일부러 정사 소리를 들리게 했어. 며칠 지나자 궁내에 소문이 쫙 퍼지기 시작했어. 귀족 출신이라더니 얼마나 음탕한지 신음소리가 간드러진다느니, 2대에 걸쳐 부자를 다리 사이로 농락한다느니 하는 더러운 소문이 돌았어. 창부의 피가 흐른다는 꼬리표도 달렸어. 곧 뒤에서 수군거리던 사람들은 스티브 앞에서 대놓고 욕을 하기 시작했어. 스티브가 지나갈 때 바닥에 침을 뱉는 사람도 있었어. 스티브는 궁내의 모든 사람에게 갖은 모욕을 받기 시작했어. 스티브는 토니의 방에서 벗어나면 제 방에만 숨어 지내야만 했지. 


어느 날 스티브는 방안에만 있는 게 새장 안에 갇혀 있는 것처럼 답답해 산책을 나가기로 했어. 언제부턴가 스티브는 사람들이랑 마주치는 걸 극도로 꺼리게 됐어. 사람들의 눈을 피해 자신만 아는 익숙한 길을 따라 산책로로 빠져나왔어. 귀족일 시절 업무를 보다가 바람이나 쐴 겸 하워드랑 자주 걷던 길이었지. 갑자기 하워드 생각을 하니 스티브의 두눈에 눈물이 차올랐어. 하워드의 다정한 얼굴과 그와 나눈 대화가 떠오르니까 계속 서러워서 눈물이 나는 거야. 나라의 정사를 걱정하며 하워드와 의견을 나누곤 했는데 지금은 어쩌다 침노 신세가 된 건지 모르겠지. 스티브는 눈물을 훔치고 천천히 돌다리를 걷기 시작했어. 오랜만에 따뜻한 햇살을 받으니 나른한 기분이 들면서 편안해졌어. 하지만 그것도 잠시, 멍하니 돌다리 옆에 앉아있는데 근처에서 들리는 여자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돌아왔어.


“침대 위에서 다리나 벌리는 침노 년이랑 마주치다니 오늘 일진이 사납구나.”


깜짝 놀라 돌아보니 여러 시종을 대동한 귀족 여자가 서있었어. 우아하게 생긴 여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란게 믿기지 않아 스티브는 잠시 머릿속이 멍해졌지. 여자는 토니가 스티브를 무너트릴 때 가장 최전방에서 토니를 지원하던 가문의 딸이었어. 결혼 1순위로 꼽히는 가문이라 벌써부터 잘 보이려고 성 문턱을 찾는 사람들로 줄을 잇고 있었지. 하지만 토니가 스티브에게 온 신경을 쏟느라 계속 미루는 바람에 혼사가 늦어지고 있었거든. 여자의 얼굴엔 왕을 뺏겼다는 열등감과 혐오 가득한 기운이 전해져왔어. 여자가 스티브를 스쳐지나가며 말했어. “다시 한 번만 더 내 눈에 띄면 매질을 할 것이니 각오하거라.” 스티브는 다음날부터 남들의 눈에 안 띠게 밤에 몰래 산책을 다녀야만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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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날 봐.”


토니는 스티브의 몸에 크게 허리 짓을 하고 사정 하더니 몇 번째 불렀는지 모를 이름을 부르고 있었어. 그러나 스티브는 제 이름이 아무리 불려도 반응하지 않았지. 토니는 스티브에게서 몸을 빼고는 침대에서 내려와 가운을 입었어. 밖에 누구 없냐고 소리치자 시종 하나가 들어왔어. 시종은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스티브 몸에 옷을 입히고 밖으로 데리고 나갔어. 스티브는 힘없이 딸려가기만 했지. 토니는 스티브의 뒷모습을 보면서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쳤어. 


스티브의 눈동자에서 눈에 띄게 생기가 사라졌어. 평소 같았으면 반항의 눈빛이나 혐오의 기색이 온몸에서 드러났는데 이제 스티브는 토니가 움직이는 대로 흔들리기만 했어.


스티브가 서서히 정신적으로 피폐해질 즈음, 온 가족이 다 처형당했다는 소식은 스티브가 가진 삶의 의욕을 모두 잃게 만들었어. 스티브는 모든 음식을 거부하고 제발 죽여 달라고 울부짖었어. 자살을 시도하다가 제지당한 적도 여러 번이었지. 토니도 말라 죽어가는 스티브를 보면서 슬슬 지쳐가고 있었어. 토니가 차지한건 스티브의 빈 껍데기뿐이었어. 가끔 토니는 영민하면서도 맹랑했던 스티브의 예전 모습을 회상해 보곤 했어. 아니러니 하게도 스티브는 하워드 곁에 있었을 때가 제 자리인 것처럼 제일 빛나고 아름다웠던 것 같아. 럼로우의 말을 듣지 않은 게 후회됐지만 상황을 되돌리기엔 이미 많이 늦은 것 같았지.


스티브가 사라지자 럼로우가 방으로 들어왔어. 토니는 럼로우의 얼굴을 보자마자 빈정이 상했어. 또 스티브 일로 질책하러 온 건가 싶어 나가라고 하려 했는데 럼로우의 얼굴은 심각했지.


“급하게 전해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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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가 회의장으로 달려가자 이미 관료들이 모두 모여 있었어. 변방에 있던 유목민들의 힘이 어느 틈에 강성해져 북쪽 성벽을 쳤다는 소식이었지. 성도 하나 빼앗겼다는 전갈에 장내가 소란스러워졌어. 사실 모든 병권을 장악하고 훈련시키던 게 모두 스티브의 일이었는데 스티브가 숙청당하고 분위기도 어수선한 상태에 아직 마땅한 대체자가 없었거든. 거기에 내부에선 아직도 권력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있으니 바깥 주변 상황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거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토니한테 딱 불리한 타이밍이 되었지. 


토니가 하고 있는 짓이 하워드랑 다른 게 뭐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는데 외부 상황까지 안 좋아지니까 온갖 비난이 다 토니한테 쏟아지는 거야. 국왕이 노예 하나에게 온 관심을 기울이느라 전혀 다른 일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탓이라면서.


“지금 폐하께서 하시는 일이 그 자를 총애하던 선왕과 다를 바 없으니 다들 우려가 많습니다.”

“그럴 일 없으니 걱정들 좀 싸매시구려.”

“이게 다 폐하께서 침노 하나만 싸고 도니 터지는 불만 아니겠습니까?”


다들 말은 못하지만, 그들은 스티브가 회임이라도 할까봐 두려워하고 있었어. 지금 기세라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토니가 스티브의 아이를 왕자로 세우겠다고 나서도 이상한게 아닐지 모른다고 생각했지.


“빨리 혼인하고 후사를 보셔야 뒷말이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결론은 도돌이표처럼 또 혼인 얘기로 돌아왔어. 토니도 이번만큼은 자기 뜻대로만 밀고 나가기 어렵다고 생각했어. 혼인으로 맺어진 강력한 아군의 서포트도 중요했지만, 절 도와준 가문들의 불만을 잠재울 필요성도 있었으니까. 토니는 이번엔 한발 물러나기로 했지. 어느 정도 변방 일이 마무리 되자 결혼 날짜가 잡혔어.


스티브의 귀에도 토니가 혼인할꺼란 소식이 들려왔어. 입 가벼운 시종들이 떠들어 댔으니 못 들을래야 못들을 수가 없었지. 토니가 절 찾지 않은지도 꽤 됐거든. 가끔 밥을 가져다주거나 방 청소를 하러오는 하녀들이 넌 이제 왕한테 버림받았다면서 신나게 재잘댔어. 니깟게 왕을 차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냐며 조롱을 해왔지만 스티브는 별 감흥이 없었어. 이런 날이 올꺼라는 건 이미 짐작하고 있었거든. 왕의 흥미를 잃은 침노들의 최후가 어떻게 될지는 뻔했으니까. 스티브는 이제 죽을 날도 머지않았다는 생각을 하며 마음을 정리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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