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 - [세즈반스] 이 복숭아는 제껍니다

* 전편은 딱히 안보셔도 됩니당 :)




중국에서 돌아온 이후 세바스찬 스탠의 일과는 기묘한 복숭아와 함께 시작됐다. 이 과일은 잠을 자지 않기 때문에 세바스찬의 수면 동안 복숭아의 모습으로 얌전히 있으면 다행, 가끔씩 인간 모습으로 세바스찬 옆에 파고들어 그의 잠을 깨우곤 했다. 물론 복숭아가 옷을 걸치리란 걸 기대하는 건 애초에 언감생심이라 세바스찬은 새벽부터 옆에 누워있는 남자 때문에 아랫도리를 진정시켜야만 했다. 거기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앞에서 시도 때도 없이 인간 모습으로 벗고 다니니 세바스찬은 크리스를 길들일 필요가 있음을 절감하게 됐다. 집으로 데리고 온 이상 언제까지 크리스의 존재를 감추며 살기도 힘들 것이고 주변인들에게 의심을 사지 않게 인간의 모습으로 소개해둘 필요가 있었다. 만약 가족들과 하인이 자신의 방에서 낯선 남자의 벌거벗은 모습을 본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라 세바스찬은 몸을 오소소 떨며 팔뚝을 비볐다. 


먼저 세바스찬은 크리스에게 옷을 입히기로 마음먹었다. 자는 중에 몰래 치수를 재어 양복점으로 들고 갔더니 주인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엊그제 양복을 새로 맞추시더니 다시 맞추시는 겁니까?” 

“제가 입을 옷이 아니라서요. 그 친구가 시간이 없어서 대신 왔습니다.” 

“매우 바쁜 분이신가 보네요.” 


양복점 주인이 웃는 얼굴로 흔쾌히 종이를 받아들었다. 그렇게 양복점에서 크리스의 옷을 맞춘 세바스찬은 곧장 집으로 달려왔다. 옷을 맞췄으면 응당 옷을 입혀야 하는 것이 다음 단계리라. 하지만 평생을 벗고 살았던 크리스에게 옷을 입히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억지로 셔츠를 입히고 넥타이까지 매주자 크리스는 목이 답답한지 풀어버리기 일쑤였다. 그는 도대체 인간이 입는 옷을 왜 집에서 입어야 하냐면서 투덜거렸다. 


“네가 자연인이 되어 돌아다니는 걸 다른 사람이 보면 내가 곤란해지니까.” 

“주인님이랑 있을 때만 인간 모습으로 있으면 되잖아요.” 

“보는 눈이 많아서 위험해. 조만간 널 여행지에서 알게 된 사람으로 소개할 거니까 인간의 옷에 익숙해지도록 해.” 


사람이란 말에 크리스가 맘에 안 드는지 입술을 삐죽거렸다. 


“주인님께 제 존재감이 한낱 그 정도 밖에 안 되나 보군요. 친구도 아니고 사람이라니” 

“아, 헛수작 그만 안할래!” 


크리스는 세바스찬의 구박에도 뾰로통한 얼굴로 계속 중얼거리더니 예전 주인이 그립다며(그때가 좋았지 feat.추억팔이) 세바스찬의 심기를 살살 건드렸다. 세바스찬이 말없이 노려보자 크리스가 눈을 도르륵 굴리며 눈치를 살피더니 다시 아양을 떨어댔다. 


“절대 다른 사람들한테 안 들킬 테니까, 제발 다시 한 번만 생각해보면 안 돼요? 주인님~?” 

“주인님이 아니라 세.바.스.찬! 벌써 잊었어?” 


세바스찬은 애교 따윈 통하지 않는다는 듯한 사악한 미소를 날리곤 넥타이를 가리켰다. 


“다시 매. 당장” 

“맬줄 모르거든요?” 

“방금까지 잘 맸잖아?” 

“글쎄요… 그새 잊어먹었나 보죠.” 


입이 튀어나와서 툴툴대는 게 영락없이 삐친 태도였다. 세바스찬이 한숨을 쉬며 직접 넥타이를 들었다. 넥타이를 매기 위해 얼굴이 가까워지자 크리스가 딸꾹거리더니 금세 조용해졌다. 크리스는 넥타이에 집중하느라 길게 내리깐 세바스찬의 고운 속눈썹을 빤히 보며 눈을 깜빡였다. “이걸 여기서 돌리고- 읍!” 갑자기 입술이 포개지자 세바스찬은 그다음 말을 입안으로 삼켜야 했다. “뭐, 뭐야?” 크리스는 넥타이를 매다 말고 황당해하고 있는 세바스찬을 향해 도리어 본인이 황당하단 표정을 지었다. 


“키스해달란 거 아니었어요?” 

“……” 


예전 주인이 도대체 어떻게 교육했길래 애가 이 모양이야? 한 번도 본적 없는 사람의 얼굴을 세바스찬이 궁금해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세바스찬은 외출하면서 크리스에게 복숭아 모습으로 얌전히 있으라며 신신당부를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불안했는지 직접 변하는 걸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밖에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밤이 돼서 집에 돌아온 세바스찬은 방문을 열자 침대에 엎드려 손을 흔드는 크리스를 발견하곤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세바스찬의 이마에 굵은 힘줄이 솟아올랐다. 


“내가 없을 때 인간 모습으로 있으면 안 된다는 거 못 들었어? 그건 또 어디서 꺼낸 책이야.” 

“서재에 갔더니 잔뜩 있던데요?” 

“거길 함부로 내려갔단 말야! 갑자기 책을 왜 읽는건데?” 


크리스는 영장류에 관한 책장을 팔락거리며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손을 저었다. 


“인류의 진화에 관한 탐구욕이 생겼다고나 할까요?” 

“내려갔다가 들켰으면 어쩌려고. 크리스 너 진짜…” 


세바스찬의 입장은 안중에도 없는지 크리스가 눈을 찡긋하며 책을 덮었다. 


“전 보통 인간과 달리 청각이 좋아서 멀리 있는 발소리도 들린다구요. 누군가 오면 바로 복숭아로 변신할 테니 안심하세요, 스탠씨” 


스탠이라는 말을 추가로 붙이며 싱글거리는 모양새가 왠지 더 세바스찬을 약 올리는 것 같다. “그걸 지금 나보고 믿으라고 하는 소리야?” 세바스찬이 미간에 손을 얹었다. 아이고 골치야. 저걸 어떻게 혼내야 잘 혼냈다는 소문이 날까 고민하던 것도 잠시, 곧 뻔뻔한 인간(?)을 혼내줄 해결책이 떠오르자 세바스찬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세바스찬은 곧장 침대로 달려들어 엎드려 있는 크리스의 오금을 무릎으로 눌렀다. 갑자기 뒤에서 눌린 크리스가 어리버리한 표정으로 버둥거렸다. 


“앗, 뭐 하는 거예요?” 


세바스찬이 엉덩이 살을 꽉 쥔 채 벌리자 크리스가 뛸 듯이 반응했다. 크리스는 얼굴이 보이지 않게 뒤에서 하는 체.위를 극도로 꺼렸기 때문에 지금 이 상황 자체가 매우 불쾌했다. 


“제가 이런 자세는 싫다고 했잖아요.” 

“음, 언제 싫다고 했었어? 난 잘 모르겠는데.” 


세바스찬이 풀리지도 않은 곳을 아무 배려도 없이 쿡쿡 찔러대자 크리스가 몸을 빼려 시도했다. 그럴수록 세바스찬은 허리를 더 꽉 누른 채 손가락을 깊게 집어넣었다. “으아악 아프다고요?” 크리스는 당황했는지 팔을 허우적거리며 소리 질렀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가 싶더니 그는 급기야 훌쩍이기 시작했다. 


“제가 잘못 했어요. 제발 빼주세요…” 


크리스가 우는소리로 애원해보지만 ‘뭘 잘못했다고?’ 라며 시치미를 뚝 땐 세바스찬은 손가락을 멈추지 않았다. 점막 안을 건드리는 손가락이 점점 늘어나자 크리스가 바르르 떨며 앓는 소리를 냈다. 


“싫어… 아… 싫ㅇ” 


촉촉하게 눈물짓는 크리스에게 돌아오는 말은 사.형선.고처럼 야박하기만 했다. 


“좋은 말로 할 때 옷을 입고 다녔어야지. 안 그래, 크리스?” 


꼼짝없이 붙잡힌 크리스는 엎드린 채 몇 시간을 시달려야 했다. 그 후로 크리스는 세바스찬 앞에서 절대 옷을 벗고 다닌 적이 없었다고 한다. 









원래 주인은 히들이었으면 좋겠다 -ㅠ- 

히들이가 교육 다 시켰어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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